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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Oct 25. 2020

혼삶이 좋으려면
공간이 좋아야해

선택할 수만 있다면 제발 반지하는 살지마세요.


세 번째 집, 

홀로 살아보는 역삼동 반지하




서울살이 1년 반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됐다. 1년 반 동안 나는 내 작고 귀여운 월급을 착실히도 모았다. 하지만, 내가 이직하는 광고회사 소재지는 강남구 논현동. 이 근처에 혼자 살 원룸 전세를 구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왜 광고회사들은 다 여기 모여있는 거야? 심통이 났지만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집을 구하는 명확한 조건은 회사까지의 거리와 월세였다. 이전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야근은 밥먹듯이 할 것이고, 나 같은 올빼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역이니 무조건 회사 도보 15분 거리 이내의 집을 찾길 원했다. 문제는 내가 내민 월세의 조건이었는데 웃기게도 난 이 강남구 한복판에서 월세 40만 원대의 집을 원했다. 영등포 푸르지오 아파트 전체를 (타의적으로) 40만 원대에 주고 살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차를 타고 회사 근처의 집을 빙글빙글 돌아보니 강남에서 이 조건의 원룸은 옥탑방, 반지하, 아니면 아주아주 시설이 노후화된 집들 뿐이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가 집에서 잠만 잘 텐데 위치가 어딘들 상관없겠다 싶어 그중 가장 방 컨디션이 좋은 반지하 원룸을 골랐다. 이것이 바로 자취 대암흑기의 시작이라는 걸 이때는 몰랐다. 계단을 5칸 정도 내려가는 층수에, 9평의 분리형 원룸, 한 층에 3가구가 사는 좀 큰 빌라였다. 회사까지는 뛰면 10분 컷. 이 정도면 진짜 잘 구한 집이라 생각했다.


1년 계약을 쾅쾅 찍으니 한껏 마음이 들떠왔다. 오늘의 집과 집 꾸미기 앱을 들락날락거리며 남들이 한껏 뽐내놓은 인테리어를 내 원룸에 갖다 놓는 상상을 했다. 내가 진짜 혼자 쓰는 내 집이니 내 맘대로 꾸밀 거야! 한 껏 행복 회로를 돌리고 집주인 아저씨께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저 101호 세입자입니다. 제가 집 내부 인테리어를 좀 하려고 하는데, 페인트칠이랑 시트지 좀 붙여도 되나요? 깔끔하게 바꿔놓을게요!"

"...월세 처음 살아봐요? 이 집 나갈 때 처음 상태 그대로 원상복구 안 해놓으면 다 비용으로 배상해야 돼. 누가 남의 집에 인테리어를 해요. 허허. 그냥 지내세요." 

"아.. 넵.." 


남의 집엔 못질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인테리어는 좀 포기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말했던 아주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이 시작됐다. 


우선, 샤워할 때 화장실 문 열고 씻었다. 화장실 안에서 옷을 입고 나올 필요도 없었다. 나체로 몸을 좀 말리다가 슬금슬금 옷을 입었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유로움은 이런 거구나. 방을 마구 어지르고, 부엌 설거지가 좀 쌓여도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1층이라 노래도 부르고 집에서 춤도 마구 췄다. 하지만, 혼자 살아서 가장 좋았던 건 방구를 아주 시원하게 빵빵 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와. 이것이 진정한 프리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자유로움이 주는 즐거움의 유통기한은 내게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원룸에서 생활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나는 심각하게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혼자 살아보는 인간이라 어색해서 그럴거야라고 하기엔 이 불편감들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거의 매일 밤 울면서 가족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저녁 약속을 집고, 귀갓길엔 항상 집 주면을 빙빙 돌면서 배회했다. 


왜? 그렇게나 혼자 살아보고 싶다던 내가 대체 왜? 뭐가 저렇게나 힘들고 슬펐던 걸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혼자 살 때 인간이 힘들 수 있는 4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힘든 요소들이 모두 뭉쳐있는 최악의 혼삶을 경험했던 거라는 사실도 함께.. 




혼자일수록,

더 좋은 공간에 머물러야 해



4가지 요소 중 첫 번째는 단연코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기생충>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거 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부잣집에 위장취업을 한 가족 네 명 모두에게서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걸 발견하고는 세제를 바꿔야 하나, 물빨래를 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기정이가 한 말이다. 반지하 특유의 꿉꿉한 냄새는 이사를 가야만 없어진다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저 대사를 절절히 공감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다가도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늘 아파트 아니면 빌라를 살았던 나는 반지하 냄새가 존재하는 줄 몰랐다. 뭐 다 같은 집 아닌가. 아예 지하실도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반지하는 지상의 냄새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하의 냄새가 반쯤 섞인 오묘하고 쾌쾌한 냄새가 난다. 그 안에 살다 보면 옷, 물건, 심지어 머리카락까지도 그 냄새가 스며든다.


하루는 회사에 늦을까 봐 뛰어가고 있는데 내 머리카락이 휘날리면서 내 얼굴을 스쳤다. 아. 이게 무슨 냄새지? 분명 어제 저녁에 뽀송하게 감아뒀던 내 머리에서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후각에 민감했던 나는 회사에 앉아 내 겉옷, 입은 티셔츠에 코를 대고 킁킁 맡아봤고 같은 냄새가 나는걸 안 순간 이게 반지하 냄새구나를 알 수 있었다.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아무리 팍팍 쳐대도 말릴 때 주위 공기에 있는 반지하 냄새가 스며들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긴 어려웠다.


 반지하의 또 다른 단점은 바로 빛이 반만 들어온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에게 햇빛이 그렇게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줄 몰랐다. '회사 다녀오면 어차피 저녁인데?'라고 생각하지 마셔라. 일찍 퇴근한 날, 반차를 낸 날, 아픈 날, 주말 낮 시간, 집에서 쉬고 싶은 날. 퇴근해도 해가 밝은 날.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나의 주거공간에서 보낸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빛이 반쯤 들어오게 되면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가 없다. 불을 켜놓지 않으면 낮에는 저녁 같고, 저녁에는 밤 같고, 밤에는 더 칠흑 같은 암흑이다. 낮 없이 밤이 계속되는 기분이다. 오랜 시간 있다 보면 내 기분과 감정도 점차 암흑으로 떨어지기 쉽다. 게다가 빛이 없으니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수분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축축한 공기들과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빨래를 한번 해서 말리려면 무조건 제습기는 필수다. 곰팡이와의 싸움에서도 필수적인 무기다. 빛이 잘 안 드는 집에 사신다면 제습기는 꼭 챙기셔라.


하지만, 내게 있어서 가장 무시무시했던 점은 바로 벌레의 등장이었다. 이름하야 바.퀴.벌.레.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반지하치고 벌레도 안 나오고 괜찮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그 친구들은 지하에 있는 하수구에 서식하기 때문에 언제든 가까운 구멍을 틈 타 올라올 수 있다. 화장실 하수구, 부엌의 환풍구, 창문의 틈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나는 불을 끄기 무서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주인 아저씨께 몇 번이고 하소연을 했지만 그때만 약을 쳐주시는 정도에 그쳤다. 잠들기 직전까지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오래된 건물이었기 때문에 화장실 전등도 자주 나갔고 변기도 자주 고장 났다. 철물점에 가거나 인터넷을 다 뒤져가며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집주인 아저씨께 수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낯선 아저씨가 들어오는 것조차도 나는 너무 불편했다. 그나마 좋은 집주인이었기 때문에 집에 문제가 있을 때 나서서 봐주셨지만, 그렇지 않은 집주인들도 많이 있다. 혼자 사는 건 자유로운 대신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됐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나는 정말 저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에 살았던 것 같지만 사실 꽤나 좋은 컨디션의 방이었다. 9평에 부엌과 방이 분리되어있고 굉장히 넓고 외관과 내부도 모두 깔끔하고 괜찮았다. 엄마가 와서 보고서도 오케이 한 집이었으니까.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 이것저것 예쁜 가구와 소품도 가져다 놓고 나름 오늘의 집에 나오는 집들을 흉내 내 보았을 땐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인테리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그 집 조건에서 오는 결함들이 내가 견딜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걸 깨닫는 건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혼자 자취하게 되는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좀 더 돈을 주고서라도 좋은 집에 살라고 말해준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처럼 어떤 부분이 안 좋은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덜컥 계약해버리는 사람도 있을 테니 꼭 말해주곤 한다. 누군가와 살 때보다 혼자 살 때 공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공간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공간은 내 심리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역으로 좋지 않은 공간에서 좋은 마음과 영감을 얻기는 어렵다. 이게 바로 4가지 요소에서 공간을 먼저 소개한 이유이다.




그러니, 혼자 사신다면 꼭 좋은 집 구하셔라.

마음에 안 드는 공간이면 마음에 들게 바꾸셔라.


그래도 선택지가 있다면 반지하는 피하시길.

제습기나 건조기는 어떻게든 장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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