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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가은 Oct 01. 2020

결혼 혹은 하우스메이트

1년만 혼자 살아보겠습니다.



솔깃한 제안 : 그냥 둘이 살래? 




쉐어하우스 2층 침대 비스므리한 사진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이직한 곳은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광고회사인데 이 근처에는 아무리 찾아도 좋은 조건의 아파트 하메를 구하기 어려웠다. 서울 집값 중 가장 무섭다는 강남구에서 집을 구하고 있으니 없을 만도 했다. 물론 강남에도 쉐어하우스를 한다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한 방에 2층 침대 두 개를 두고 여러 명이서 쓰는 형태였다. 독립된 공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구조의 방을 보고 있자니 다시 대학교 기숙사에 간 느낌이어서 그냥 발을 돌렸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혼자 지내는 '원룸'에 살기로 했다.


빌라의 작은 원룸을 알아보는 것은 기존에 살던 아파트 하메랑은 또 다른 난관들이 있었다. 오로지 내가 혼자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수압은 적절한지, 햇빛은 잘 드는지, 집에 곰팡이가 없는지 등 다양한 조건들을 따져봐야 했다. 벌써 서울에서 세 번째 집을 알아보는 것이지만, 이 과정은 늘 머리가 아프고 몸도 힘들고 약간 서글퍼지는 과정이다. 그날도 한참을 강남 원룸을 알아보고 물기 없는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남자친구의 아버님이었다. '오잉..? 나한테 왜 전화를 하셨지?' 늘 그렇듯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것은 약간의 긴장이 서린다.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으니 밝고 유쾌하신 아버님의 인사가 들려왔다.



"안녕 가은이! 잘 지내니? 이직했다며 축하해~ 집은 구했고?"

"오 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네 강남 쪽으로 이직해서 지금 집 알아보고 있어요..!"

"그래, 그렇다고 얘기 들었다. 근데 은섭이 이놈도 회사랑 거리가 멀다고 서울에서 자취하겠다고 하는데 

이럴 거면 너희 둘이 그냥 지금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건 어때? 회사 중간 위치에 괜찮은 집으로..!"



전혀 생각지 못한 파격 제안이었지만 아버님 얘기도 일리가 있었다. 남자친구랑은 만난 지 4년째. 대학생 때 만나 취준생 시절을 거쳐 같이 사회인이 되었다. 둘 다 서울에 직장이 있지만 나는 지방 사람이라 일찍이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남자친구는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 여의도로 1년째 출퇴근을 강행하고 있었다. 최근 남자친구는 회사까지 출근만 2시간이 걸리는 이 고된 하루가 너무 지친다며 그도 자취를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님은 결혼 전까지는 집에 있으면서 돈을 모으라는 입장이셨다. 중간에서 아버님은 서울에서 각각 자취를 하겠다는 4년 만난 아들내미 커플을 보시곤 차라리 빨리 결혼하라고 전화를 하신 거였다.


사실 이 전화가 친한 '여자인'친구 부모님의 전화였다면 나는 당장에 이 친구랑 둘이서 살 투룸을 알아봤을 것이다. 서울에 지내다 보면 좋은 컨디션의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이 꽤나 필요하기에 친한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서 한 집에 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금까지 있던 아파트 하메도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닐 뿐 여자들끼리 방 하나씩 차지하고 사는 쉐어하우스였으니까. 서울 방을 구하는 두 명의 사회인, 4년간 알고 지낸 친한 사이. 돈을 모아 서울에 한 집에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간단한 얘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이 들어가는 순간 이것은 하우스메이트가 아니라 결혼이 된다는 것이 아주 큰 차이점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한다면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 할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 나이는 26살. 남자친구는 27살. 사회초년생에 모아둔 돈도 많지 않을뿐더러 덜컥 하우스메이트 계약하듯 결혼을 할 순 없었다. '결혼'이라는 건 집뿐만 아니라 내 가치관, 생활방식, 경제, 나의 가족, 친구까지 내 삶을 모두 공유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님이 집을 핑계 삼아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건 꽤나 내가 맘에 들었다는 뜻이었을 테니 기쁘게 고민하기로 했다. 


하지만, 프롤로그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20대 중반까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 아니었다. 자극적이고 안 좋은 소식들을 자주 접하면서 내게 결혼이라는 건 없는 일이야! 생각하며 고민 없이 넣어뒀던 화두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나는 한 평생 '누군가'와 계속 함께 지내왔다는 것과 그 과정들이 나에게는 다양한 관점과 재미와 삶의 활력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난관을 헤쳐나가는 순간까지도 꽤나 배운 점들이 많았다. 문득 한강뷰 아파트 주인장 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랑 하우스메이트로 부대끼며 살바엔, 10년 만난 남자친구와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남자친구와 충분히 상의한 후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1년의 기한을 두고 결혼에 대한 생각, 재정적 준비, 삶의 방식을 더 깊게 얘기 나누며 맞춰보기로. 그리하여 나는 원룸을 1년만 계약하고, 남자친구는 2시간 출퇴근을 1년만 더 연장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도 한 번쯤은 진짜 혼자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 싶기도 했다. 나랑만 지내보는 시기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느껴보지 못했던 그 자유로움과 편안함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늘 마음에 품고 있던 홀로라이프에 대한 기대가 다시 몽글몽글 솟아났다. 특히나, 이번에야말로 앞 서 나열했던 홀로 살아볼 수 있는 자취방의 로망을 실현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야. 드디어 서울에 혼자 사는 까리한 여성을 흉내 내 볼 수 있는 건가. 


이정도는 꾸밀 수 있겠지 생각했던 누군가의 원룸인테리어 ^^


집 벽지는 이렇게 하고, 

체리 몰딩은 회색으로 바꾸고,

장판은 헤링본 스타일로 바꾸고, 

소품은 화이트톤으로 맞춰야지. 


집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샤워를 할 수 있고,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고, 

방을 마구 어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니!






아- 1년이 지나도 혼자 사는 게 좋으면 어쩌지? 

꺄르르꺄르르




... 그때는 몰랐다. 

세번째 집, 역삼동 원룸에 혼자 살면서 

내 인생 가장 처절하고 처참한 시기를 보내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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