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많지만, 대화는 하고 싶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청'이에요."
코칭을 배우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코칭 교육을 수료했다. 특히 나는 그 누구보다 엄마와 사이가 좋아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어느 정도 코칭을 배우고 그 부분은 해소가 되어가고 있다. 집에 가서 엄마랑 대화를 하다 보면 "너 코칭 배우길 진짜 잘했다. 네가 조용히 얘기 듣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코칭 하나 배워두길 잘했단 생각이 잠시나마 든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청'이라고 한다. 사람의 말을 끊지 않고, 조언한답시고 '이렇게 해!'라는 답이 아닌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 그래서 어느 정도 경청하는 걸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데 문득 '이렇게 경청만 하면, 나는 언제 나의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말이 없어지거나 혹은 말이 엄청 많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어딘가 전화를 걸어 속사포처럼 대화가 되는 아무 말이나 내뱉고 싶을 때가 있다. 집에서 살 때 쉴 틈 없이 울리는 엄마 핸드폰 벨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엄마도, 엄마랑 통화하는 이모들도 모두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 싶은 심정 때문에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던 걸까.
자취를 시작하기 전, 가족들과 생활소음 속에서 지낼 땐 그렇게 혼자 있고 싶고, 모든 소음으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막상 혼자 살기 시작하니 '고독사' '외로움'이란 단어가 뭔지 조금씩 체감이 되어가고 있다. 혼자서 살만한 원룸에서 어느 날은 티비소리만, 어느 날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 말을 경청하라 했더니 작은 원룸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핸드폰 연락처에 들어가 저장된 전화번호를 훑어본다. 쉽게 통화버튼 누를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손가락으로 세어보다 결국 모든 손가락이 펴져있음을 느낀다. 사람들의 말에 '아 맞아요~ 그렇죠~'와 같은 공감해 주는 대화 말고, 그런 에너지 쏟는 말 말고, 쉬는 말이 하고 싶다.
내가 이랬고, 저랬고, 시시콜콜하지만 입으로 나오는 말들로 마음이 쉬어지는 그런 말을 하루쯤은 아무한테나 쏟아내고 싶다. 그러다 쏟아내는 게 지쳐갈 때쯤 말을 서서히 줄여가며 스르르 잠들고 싶다. 그게 뜨거운 바람이 들어오는 여름날 열대야가 찾아온 밤이든, 혹은 찬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겨울밤이든 괜찮다.
어쩌면 내가 여기저기 글을 쓰고 저장하는 행동은 아무한테나 전화해서 쏟아내지 못하는 말들을 삼키다 삼키다 결국 토해낼 곳이 필요해 찾다가 나온 습관이지 않을까 싶다. 생각이 많은데 생각 정리를 머리로만 하기엔 또 머리는 그렇게 비상하지 못해서, 그래서 여기저기 적어두는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싶다.
“아무한테나 전화 와서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
“여태 떠들었는데, 맨날 떠들었는데, 여전히 떠들고 싶니?”
“나 하고 싶은 말은 못 했어. 존재하는 척 떠들어내는 말 말고, 쉬는 말이 하고 싶어. 대화인데, 말인데, 쉬는 것 같은 말."
<나의 해방일지 中 염기정이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