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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Aug 06. 2023

0. 이번생에 눈물이 멈추는 날이 올까

눈물 나는 인생

어제저녁 TV에 나오는 뉴욕 풍경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한바탕 울고 나면 과거 사주 보러 갔을 때 들었던 얘기가 생각이 난다. 



"눈이 커서 울 일이 많을 거예요. 일부러라도 크게 뜨려고 하지 말아요."



저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20년 넘게 '울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나는 관상이, 사주팔자가 그냥 눈물이 많은 애구나. 분명 사주팔자니 관상이니 안 믿는 사람들에겐 그저 툭하면 우는 애로 보이겠지만 나는 여전히 스스로 '이번 생은 눈물 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라고 스스로 되뇐다. 



어제저녁 눈물을 쏟아낸 것에 대해 원인제공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금요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하와, 자주 연락하지 않아도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의 연락, 그리고 정말 드문드문 연락하며 말 그대로 지인의 관계만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고 나는 또 인간관계에 대한 공허함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이렇게 점점 인간관계가 축소되는 건가'

'나는 아직 결혼도 해야 하는데, 내 결혼식엔 누구까지 불러야 하지? 내가 부른다고 좋아할까?'

'그럼 도대체 나의 장례식엔 누가 와줄까? 슬퍼하기는 할까? 내가 죽었단 소식을 전해 듣기나 할까?'

'해외에 나가서 한국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연 끊고 살면 좀 괜찮아질까?'

'한국 너무 힘들어... 어? 뉴욕이네? 저긴 사람들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일은 없을까?'



생각의 흐름은 마치 장마철 한강물 불어나는 속도와 같이 급속도고 커져만 갔고, 결국 TV를 같이 보던 남자친구에게 '나는 요즘 나를 위해 글을 쓰는 시간이 조금도 없었어...'라고 말하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그럼에도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는 듯 남자친구는 내 눈물이 잠잠해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울 때 '왜 울어~ 울지 마~'와 같은 위로를 건네지 않아서 나는 아직도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눈물이 조금 잠잠해지면, 다시 남자친구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내뱉는다. 사람들은 너무 잘 살고 있는 거 같다는 얘기,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뭔가 떳떳하지 않은 거 같다는 얘기, 이제 생활고를 벗어나 돈이 생기는데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를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그리고 털어놓지 못한 얘기들은 속으로 다시 삼켰다. 아마 밖으로 나가지 못한 얘기들은 소화되지 못하고 언젠가 다시 나를 탈 나게 할 것들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나는 내뱉기보다 삼키기를 선택했다. 



인스타그램을 켠다. 맨 위에 동그라미들엔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걸 누르면 그들이 찍어서 올린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아픈 날들 중 그나마 '행복한 시간'의 순간을 찍어 올려놓은 걸 볼 수 있다. 부럽다. 부러워서 미치겠다. 내가 부러운 건, 그들의 행복한 일상이 아니라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아픈 날들' 중에 그나마 '행복한 시간'이 있다는 게 부러워서 죽겠다. 요즘 나에겐 정말 한 순간도 그나마 행복한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어제 그 감정이 떠올라 또 눈에 눈물이 고인다. 결국 어제 털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속에서 체한 건지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이상하게 주말만 되면 눈이 번쩍번쩍 떠지는 게 억울하면서도 얼마나 주말의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우면 뇌도, 몸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려고 했을까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자꾸 내가 안쓰럽다. 주인 잘못 만나 툭하면 눈물을 흘려야 하는 큰 눈도 불쌍하고, 여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불안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서 우울증을 달고 사는 마음과 정신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때문에 나는 자꾸 브런치에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다.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나 같은 사람이 혹시 어딘가 도플갱어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이번 생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뭔가 이상하게 싸하지만 이번 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팔자라면 뜻대로 살아가주면서 훗날 내가 꽤 멋진 사람이 됐을 때 이런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멋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와 같은 말을 남길 수도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사실 일기 혹은 주절거림인데 괜히 거창하게,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이라고 스스로 칭해본다. 이렇게 말해놔야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아 그거 써야 하는데, 다음 글 제목은 뭐로 하지, '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40, 50, 60, 70..... 100살 가까이 살고 계신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내 이야기는 '인생이 뭔지 1도 모르는 애송이' 같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글을 읽고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신경 끄세요.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닙니다.'와 같은 말을 건네주고 가실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30살 됐다가 다시 29살 아홉수로 돌아간 나에겐 별거 아닌 일이 아니라서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해결이 되지 않아서 씁니다. 



힘들 때마다 주변에서 '역시 글 쓰는 애라서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남들하곤 다르구나, 근데 글 쓰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힘든 인생이 좋은 거 아니야?' 같은 막말을 수없이 많이 들어서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 좀 말하고 싶어서 그래서 씁니다. 



언젠간 이 글이 더 멀리 세상밖으로 나가 나와 같은 고통의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살아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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