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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Sep 01. 2023

1. 찐친이라는 무례함이 싫어서 혼자가 되었나

기억을 더듬어 어렸을 적까지 꺼내놓다 보면 나는 굉장히 말에 민감한 애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 주변에 많았던 친구들이 새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한 두 명 만 남아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는데, 친구와 했던 얘기를 하면 엄마는 "우리 딸 친구들도 말을 예쁘게 하네~"라고 말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여전히 상대방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찐친'이라면 욕을 남발해도 된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정말 친한 친구에겐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말이 나는 먼저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깊은 관계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막말을 내뱉는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나는 입에서 쎈 소리가 나오는 게 싫었다. 쎈 소리는 그만큼 날카로워 상대방의 귀를 통해 심장에 가서 콕 박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렇게 느낀 건 내가 쎈 소리를 누군가를 통해 들었을 때 그 말이 가슴에 콕 박혔기 때문 아닐까. 



한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막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말을 막 하면 좀 더 편하고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나에게 외로움 따윈 없을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비수를 꽂아가며 그게 친해지는 계기라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나부터 누군가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기에 찐친이 되기 위해 내뱉은 말을 하고 난 밤이면 혼자 생각에 잠겨 혹시 그들이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다시 좋은 말만 해주기로 했다. 나쁜 말은 욕이 아니라, 올바르고 정직한 말로 하기로 했다. 






어렸을 적부터 모여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던 우리 가족은 여전히 내가 본가에 가는 날이면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을 시켜놓고 천장이 떠나가라 입에서 수많은 얘기들을 내뱉었다. 그 말에 한때는 울기도 하면서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대화의 꽃을 피워나갔다. 



나의 인간관계 고민에 대해 얘기하다 친오빠가 불쑥 어느 날 친구들과의 톡방이 보기 거북해지던 순간이 있었다며 말을 이었다. 남자들이라 하면 말을 더 함부로 하기에 본인도 깔깔거리며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다가 문득 처리하기 벅찬 일들을 쳐내던 중에 톡방을 열었는데 온갖 욕이 난무하고, 누군가를 놀리는 내용이 순간 훅 다가왔다고 한다. 오빠는 친구들에게 '우리 서로에 대한 예의는 지키자.'라고 단호히 얘기했고, 뒤늦게 친구들도 그때 톡방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오빠의 톡방에 있는 친구들이 찐친이 아니라서 말을 조심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벽을 허물고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렇게 찐친에 매달렸던 것일까? 막말하지 않아도 찐친이 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고작 콩나물 하나 키우면서도 '잘 자라렴~' '오늘도 예쁘구나'라고 예쁜 말을 내뱉었음에도 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나쁜 말로 친함을 과시하려고 하는지. 



결국 죽기 직전엔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고 흩어질 가루인데, 무심결에 내뱉은 욕이 상대방에게 도착한 유언이 되지 않길 바라며 오늘 한 번 더 대화방들을 훑어본다. 다행히 이제 나에게 찐친이라는 무기로 무례를 범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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