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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 Nov 30. 2023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면 안 합니다

이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건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출처 : 구글



나는 이상한 병을 하나 가지고 있다. 새로운 일을 접하면, 반짝 눈에 생기가 돌며 마치 내가 대표인 마냥 열심히 하다가 그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잘한다고 인정을 받으면 어딘가 모르게 점점 동태눈이 되어버리는 매번 해낸 성과에 대해 인정을 받아야 하는 병.



그러나, 이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병은 비록 내가 조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내 시간을 줄이고,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부탁한 일을 도와주는 병이다.



올해 어쩔 수 없는 재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프리랜서로 일하다 결국 월급을 받는 원고 작성 일을 시작했다. 짧으면 짧은, 길면 긴 교육의 시간을 버텨내 하루에 원고 5~6개를 적어내고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원고를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들이 나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처음엔 나에게 부탁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이렇게 해달라는 지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월급보다 적은 돈을 받아가며 월급을 받는 일보다 더욱 신경 써서 일을 하는 게 맞는 건가? 현타가 찾아왔다. 내 글 쓸 시간도 없이 24시간 중 4~5시간만 자고 하던 일이 어느 순간 버거워졌음에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식욕이 뚝뚝 떨어져 가면서도 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그 사람들이 고마워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노력했는데 이제 그게 잘못된 거라는 게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와달라며 내민 손길에 도와주려고 회의를 하다가도 결국 '나는 요즘 이런 게 눈에 들어오던데'라는 한 마디에 내가 쌓아온 노하우는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그럼 나에게 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셨지?
그럼 차라리 계약서를 먼저 들고 와서 '이 만큼의 보상을 해줄 테니
시키는 일을 해줘'라고 했으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있는 나의 의견보다 '요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컨셉도 뒤죽박죽으로 정한 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는 의견들이 내 귀에 꽂히지 않고 허공을 떠돌았다.



그 의견들을 잡고 귀에 넣으며 이해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나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회사를 뛰쳐나온 이유가 떠올랐다. 내가 말하는 의견마다 족족 거절당하는 게 너무 화나서 나는 회사를 뛰쳐나왔다. 추후 시간이 흘러 내가 회사를 다닐 때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그때 거절 당한 아이디어가 누군가에겐 통과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때 그 허무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의 꼬리를 연결하다 보니 나의 능력은 너무 과소평가되는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 글을 잘 쓴다고 말해주는 것과 다르게 실질적으로 글을 써주겠다고 하면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요즘엔 이게 뜨는 거 같으니 이렇게 쓰는 게 나을 거 같다'로 끝나버리는 상황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내가 좀 더 나를 신경 썼더라면, 내가 가진 능력을 사랑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오히려 그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투자했을 텐데. 한편으로는 나도 나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데 누가 나에게 시간과 돈을 주며 투자를 해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직 도와달라는 일을 하겠다고 명확히 얘기하지 않았기에, 좀 더 시간을 두고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나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를 괴롭히면서 해야 하는 일은 이제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정신과에서 잠을 더 자라고 혼나는 게 지겨워서라도, 매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남의 글이 아닌 나의 글을 쓰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좀 건강하게 일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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