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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l 06. 2023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2)

허영의 그림자 속 예술의 향유 - 08. 재즈

한두 세대만 지난 음악을 들어도 푹 젖는 추억이 고즈넉하다고 생각하며 오래된 재즈를 틀어주는 바를 좋아하던 우주였다. 술 한잔을 마시더라도 늘상 가던 재즈바를 가곤 하던 그는 익숙함의 미학을 즐기는 이였다. 그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구석구석의 모든 먼지 한 톨조차 클래식을 만드리라. 삶에 대한 진득한 이해와 리듬으로 살아가는 그는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수와 만나게 된 것이 특별한 우연이였을까. 너무나 사랑해서 잔뜩 해져버린 그의 자리에 찾아간 건 저벅저벅 크나큰 걸음의 지수의 호기심이었다. 지수는 어렸고, 얕은 아름다움은 알 지언정 깊게 숙성된 향에 대해서 향유할 줄은 몰랐다. 허나, 향과 초면이라고 해서 잠김이 깊지 않았다면 우주에게 그렇게나 확신으로 걸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수는 처음이었지만 오감으로 알 수밖에 없었다. 우주라는 와인은 독특했고, 강한 향을 가진 오크통에서 숙성되었으리라.  


와인바는 여느 때처럼 끈적하면서도 담백한 재즈가 흘러나왔고, 둘의 앞에 있는 맥주는 위스키 못지않은 향을 지닌듯했다. 한잔 두 잔 잔수가 늘어가면 왜인지 시가의 향도 그리운 듯 홀리듯 나갔다 오던 둘이었다. 비가 오는 날 밤의 재즈와 담배의 조화는 잔기교가 없는 고동색의 유화 같은 작품이었다. 유화가 고지식하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우주가 물었다면 지수는 그저 말없이 해맑은 얼굴로 우주를 꼭 껴안고 말 것이다. 당신은 유화에 비유하기에 너무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사랑스러움은 아름다운 게 분명할 텐데 어째서 숭고한 포장지를 가졌을까 의문스러운 지수였다. 오래된 것을 사랑하고 시간이 가져다준 낡은 손때를 어찌 끔찍이 사랑으로 뛰어가지 않겠냐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사랑을 숭고함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이상향을 가정해 놓은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우주는 답했다. 상상이상으로 인간은 하찮다면 하찮고 가벼운 얕은 어여쁨에 더 사랑의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 감히 그렇다고 서술할 수는 없으니 포장지를 한 겹 가져다 씌웠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포장지마저 내 몸 같아 지길 바라는 삶을 살아가리라고 전하곤, 또 다른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고는 우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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