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그림자 속 예술의 향연 - 14. 사랑의 끝
장작불이 어찌나 활활 타오르던지 불길이 무서워서 두려웠던 시절은 이제는 거짓말인 양 과거가 되었다. 불씨는 그저 차갑게 그리고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불길이 너무 세서 모든 땔감을 빠르게 태워버려서일까, 화로 근처엔 새카만 재뿐만이, 그마저도 아름답지도 않게 진눈깨비처럼 흩날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온기를 몰랐다면 몰라도 한번 불길이 번진 이후 맴도는 냉기는 더욱더 차갑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마음마저 불길에 다 타버린 것인지, 차가움은 아픔도 외로움도 아니었고 그저 무딘 마음일 뿐이었다. 그렇게 사랑은 끝났다. 아무런 일도 생긴 적이 없었고, 어떤 사건도 트리거가 되지도 않았다. 그저 전날 밤에 불타오르던 장작은 한숨 자고 일어나니 자연히 재가 되어 사라진 불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수는 쾌쾌한 매연 속에서 숨 쉬듯 재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끔찍하게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더 이상 그 다 타버린 화재현장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주와 마주 앉아서, 그간 재밌었노라고, 앞으로의 당신을 응원한다고, 그런 따듯한 대화를 기대하지만 알고 있었듯 사치였다. 애초에 냉기만 흐르는 잿빛 공간에서 어떤 온기를 기대하겠는가. 지수는 지치고 지쳐서 힘 없이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우주는 되물었다. 정말 이 공간을 떠난다면 네가 돌아올 자리는 없을 것인데, 그럼에도 떠나겠냐고. 지수도 알고 있었다. 언젠간 이 폐허에도 다시 꽃이 피고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 꽃밭이 궁금하진 않았다. 그만큼 눈빛의 초점조차 잿빛으로 공허했다. 우주는 조금 언짢은 듯 보였지만, 크게 연연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건조할진 몰라도 적어도 각자 이과수 방향은 알고 있지 않은가. 날이 핀다면 이과수에서 만나면 어떨까. 이과수에 한 사람만 도착한들, 그 또한 아름다웠던 결말이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