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Challenge
나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베짱이 기질을 타고나서 인지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고 놀고 싶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공부든 일이든 잘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데드라인을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했을 때 더 좋은 성과가 났다. 물론 그 데드라인에 임박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할 수 없기에 마지막까지 미련 없이 해보자는 것이 내 신념이다. 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일을 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다. 효율적으로 하고 싶을 뿐.. 그리고 남은 시간엔 쉬고 싶다. 이번 여름, 이 베짱이 마인드가 제대로 ‘한 건’을 해냈다.
여름 인턴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무렵, 정신없는 IT 업계 채용 프로세스에도 나름 적응하게 되었고, 직급을 떠나서 수많은 오퍼가 마지막에 엎어진 순간도 봤다. 임금 협상뿐만 아니라 사이닝 보너스, 복지 부분까지 오퍼 레터를 바로 사인하기보다는 최소한 한번 이상의 협상을 거쳐서 사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원자는 더 이상 채용에 있어서 ‘을’이 아니었다. 한 임원급 지원자는 마지막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연휴까지 반납하고 자신을 인터뷰 해준 타 회사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회사의 규모를 떠나서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줬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개발자들을 모셔간다는 표현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원자들과의 소통은 오퍼 레터를 사인하고 난 이후에도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모든 채용 과정을 다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다. 가이드라인 이메일을 줬지만 지원자들은 비슷비슷한 질문을 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한다는 건 가이드라인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의 베짱이 마인드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질문 이메일 개수를 줄 일 수 있을까.
먼저 내가 처음 인턴으로 입사했을 때의 과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 또한 오퍼 레터 사인 후에 여러 부서에서 쏟아지는 이메일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었다. 사실 이 많은 이메일들을 차분히 읽어보면 질문에 대한 답은 다 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랬듯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꼼꼼히 읽기보다는 중요한 부분만 읽고 나머지는 대충 넘겨버렸다. 글보다는 영상으로 수많은 가이드라인 이메일들을 하나로 정리하고 예상 질문과 답을 정리해 질문 이메일의 개수를 줄이는 것. 내가 이 사람들과 계속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동안 편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가이드라인 이메일의 핵심을 1분 30초의 영상으로 만들기.
그리고 그 시점 대부분의 미국 회사가 그렇듯 이 회사 역시 인턴 마지막 주에 ‘CEO Challenge’라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인턴들이 3개월 동안의 여름 인턴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 방안을 5분 동안 3개의 슬라이드로 임원진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회사는 그동안 갖고 있었던 관성을 깨고자 하고, 인턴 입장에서는 상금 혜택뿐만 아니라 임원진들도 만나고, 영국, 인도 오피스에도 생중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행사는 시카고 본사와 온라인으로 동시 진행되었다. 덕분에 본사 구경도 하고, 회사 근처에 사는 매니저 집에 초대받기도 했다.
사실상 나의 작은 아이디어가 정말 실질적으로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틈틈이 근무 중 남는 시간에 슬라이드도 만들고 영상 편집도 했다. 그리고 이 영상과 아이디어는 CEO Challenge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덤으로 상금 1000불이 있었다)
5분 동안의 짧은 시간이지만 크게 지원자의 경험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지원자의 경험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지, 여기서 내가 제시한 내용은 크게 매니저들의 빠른 인터뷰 피드백이 왜 필요한지, 재택근무로 인한 온라인 사인 필요성 (E-Signature), 직접 만든 신규 재택 근무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 비디오였다.
링크드인, 글라스 도어에서 쉽게 인터뷰 후기를 찾아볼 수 있는 요즘, 지원자들은 더 이상 ‘을’이 아니다. 좋은 인터뷰 경험이 회사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요즘, 타 기업 풀타임 오퍼를 받아 이 기업과의 인연은 여기 까지지만 2021년 여름, 가을, IT업계의 채용 시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