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ote work, Working from Home (재택근무)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 수가 무섭게 늘었던 2020년 3월, 주지사의 “Stay home order”에 따라서 말로만 들었던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서둘러 IT 부서에서 VPN을 받아 회사 노트북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재택근무를 할 때만 해도 소나기처럼 금방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 나는 퇴사도 했고,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리고 학생 신분이지만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전공 특성상 Work From Home (재택근무)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든 과목에서 다루고 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백신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다시 일상으로 복귀'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Society Of Human Resource Management (SHRM)에 따르면 코로나가 끝나도 직원들은 Hybrid 형태 (오피스 근무와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구조) 나 지금처럼 재택근무를 유지하길 바랬다.
산업이나 직군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나 역시 재택근무 초반엔 정해진 내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아무래도 회사에 있을 때는 내 업무가 아니더라도 아직 신입이기에 눈치껏 해야 되는 일들이 많았다. 리쿠르터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채용 업무뿐만 아니라 다른 인사업무들도 많이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로는 귀찮기도 했고, 가끔은 채용 업무보다 다른 일을 먼저 끝내야 했기에 주객전도 된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들이 있었기에 인사 업무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정해진 내 업무만 하고, 회사 메신저로 정해진 회의만 들어가고 정말 이상적인 근무 조건이었다. 후보자 스크린이나 인터뷰 스케줄을 잡는 것 또한 집에서 할 수 있고, 회사 메신저나 이메일로 매니저와 팀원들과 소통하면 됐기 때문에 몸만 집에 있을 뿐 회사에 있을 때와 사실상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점심시간만 되면 뭔가 허전했다. 연구소 특성상 여사원들이 별로 없어서 점심시간 때 나마 같이 모여서 짧지만 한국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순간도 좋았고, 이런저런 맛집에서 팀 런치를 했던 시간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물론 Zoom (줌)을 켜놓고 같이 점심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지만 뭔가 2퍼센트 부족한 느낌이 항상 들었다.
그리고 그 갈증은 퇴사 후에 대학원생이 되고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더 느끼게 되었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는 온라인 MBA TA (조교)를 했다. 조교 일의 경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Teams나 zoom을 활용해서 일주일에 한 번 회의를 하고, 회의를 바탕으로 정해진 점수표에 맞춰서 채점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간단해 보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경기가 안 좋아지면 이 기회에 자신의 내공을 더 쌓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 온라인 MBA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원자, 합격자 모두 전년도에 비해 많이 늘어서 (코로나 때문에 많은 학교들이 GMAT, GRE 시험을 면제한 것도 한몫을 했다. ) 그들의 과제를 채점하는 일 또한 큰 ‘일’이 되었다. 매주 70명이 넘는 사람들의 비슷한 숙제를 읽고, 평가하고, 그들의 항의 메일에 답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이었다. 얼굴을 서로 보지 않아서 일까 괜히 공격적인 항의 메일을 볼 때면 만약 대면 수업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숙제 점수 하나에 항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학교 Office for Inclusion and Intercultural Relations에서 International Educational Program 인턴을 하고 있다. 교내 교직원, 학생들의 diversity and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 계발을 목적으로 세워진 이 부서에서 다양한 문화 통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줌을 통해서 일주일에 두 번씩 공식적인 행사를 진행하는데 줌을 통해서 행사 진행을 한다는 것이 사실 상 쉽지 않다. 완벽하게 준비했지만 와이파이 문제가 있을 때도 있었고, 연습 때는 잘만 되던 동영상 재생이 실전에서는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재택근무로 처음 만난 이 관계. 같이 일한 지 3개월쯤 되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나 교류한 사이보다는 조금 어색하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Teams에 올라오는 업무 업데이트를 보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전 직장의 경우 이미 오프라인에서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메일이나 회사 메신저로 업무 피드백을 받았을 때 글로 표현됐지만 매니저가 어떤 말투로 이 일을 시켰는지, 왜 그런 피드백을 주었는지 ‘감’이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재택근무로 시작하게 된 이 일은 사실 그 ‘감’을 아직까지 모르겠다. 어렴풋이 일주일에 한 번 줌 미팅 때 매니저의 말투와 그동안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어림잡을 뿐이다. 그리고 ‘일하는 시간 관리’가 아직은 어렵다. 주 20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은 있지만 오피스로 출근했을 때처럼 정해진 시간과 요일에 가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정해진 기간 동안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일도 숙제처럼 마지막 데드라인에 맞춰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출근했을 때는 일하기 싫은 날이어도 강제로 일해야 된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일한 날이 많은데 요즘은 그런 날은 과감하게 그냥 쉰다. 그리고 산뜻한 마음으로 내 정신이 온전하게 살아있을 시간에, 그 시간이 비록 밤일 지라도 일한다. 그래서일까 생산성 측면으로 봤을 때는 재택근무가 나와는 잘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나 챙겨야 할 가족들이 많은 경우 업무와 가정과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오히려 오피스 근무를 선호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도 코로나가 끝나고도 재택근무 형태를 유지하겠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정말 재택근무가 계속 이어진다면 대부분의 업무가 프로젝트 형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그리고 과정보다는 철저하게 결과 중심, 실적 중심으로 평가가 진행될 것이다. 회사는 얼마만큼 직원들에게 근무 자율성을 줄 것이며 공정하게 인사 평가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재택근무. 마치 양날의 검 같은 존재이다. 코로나를 통해서 재택근무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불필요한 출퇴근 시간도 없애주고, ‘나’만 잘한다면 오히려 생산성 있게 일을 할 수 있다. 나 또한 재택근무의 장점을 경험해본 이상 쉽게 그 장점들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유에 따른 책임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부서마다 다른 특성을 반영해 공정한 인사평가를 할지, 온라인 상으로 사내 문화와 팀 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아직 풀지 못한 많은 숙제들이 남아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무조건 ‘전 직원 사무실 출근이다’를 외치기 전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