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9 아일랜드 넷째 날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한 시간 반 넘게 밖에서 추위를 참을 만큼의 아름다움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쌓였고 깎였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투어 업체에서 제공한 한 시간 사십오 분이 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왼쪽 길로 걷고, 오른쪽 길로 걷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춥지만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많았다면, 절벽의 길 끝까지 걸었을 것이다.
절벽에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다른 풍경들이 펼쳐졌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 걸음에는 어떤 광경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고, 한 발자국마다 마주하는 모습들은 기대를 충족시켰다. 바닥의 진흙이 미끄러워서 밑을 보며 조심히 걸어야 해서, 그 점이 참 아쉬웠다. 바닥을 보는 시간 때문에 놓친 광경들이 얼마나 많을까.
절벽도 아름다웠지만, 잔잔하지만 깊은 바다도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이 바다가 가진 위력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파도가 때리고 또 때려서 아름답고 섬세한 층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명 ‘아프니까, Cliffs of Moher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엄청난 고통을 홀로 쓸쓸히 견딘다. 참 위대한 자연이다.
자연 앞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오로라를 볼 때, 처음으로 자연을 보고 눈물이 났다. 모허 절벽에서도 눈물이 났다. 눈물과 감동의 경로를 구구절절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대자연이 앞에서 느끼는 무한한 감동이라고 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냥 바라보며 넋을 놓았고, 눈물을 흘렸다. 추위에 떨며, 한참을 서서 세 개의 절벽을 바라보았다. 밑에는 잔잔한 물결들이 겹쳐진 진한 바다가, 중간에는 각기 다른 두께의 층들이 겹쳐진 큰 돌이, 위에는 구름과 빛이 만들어낸 여러 겹의 하늘이 있었다.
가이드 북에서는 모허 절벽을 ‘카메라에 담기지 않고, 심지어 눈에도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라고 묘사했다. 일단, 핸드폰은 추위에 맛이 갔다. 내 눈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눈에 담지 못할 아름다움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길고 깊어서 ‘한 눈’에 담을 수가 없었다. 절벽 말고도, 절벽 위 하늘, 절벽 아래 바다 이 모든 것을 담기에 내 시야는 너무 작았다. 파노라마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바쁘게 돌려가며 하나의 모허 절벽을 담아냈다.
다시 오고 싶지만, 감히 내가 이 자연에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적용시킬까 봐 이번 한 번으로 남겨두고 싶다. 이 신성한 감동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다. 가끔 모허 절벽의 엽서를 보면서, 모허 절벽 외에는 모든 걸 잊은 나와 모허 절벽을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