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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il Dec 16. 2019

외국인이 외국인을 바라볼 때

2019.11.30 아일랜드 다섯째 날

 와일드 오스카는 잘 모르지만, 와일드 오스카 동상 덕분에 얻게 된 교훈이 있다. 역시, 인생은 상대적이라는 것. 혼자 여행을 다니면 사진을 찍는 게 어렵다. 나도 사진을 잘 즐겨 찍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찍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근데 외국인들은 대부분 다 사진을 못 찍는다. 한 장 얻어걸리는 요행을 바랄 뿐이다. 나는 사진을 이만큼 잘 찍어주는데, 외국인들은 그러지 못해서 살짝 불만이었다.

 사진을 부탁할 때, 내 전략은 물물교환이다. 사진 찍는 게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너 찍어줄까? 나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대신,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는다. 그냥 나중에 보고 그 사람의 실력에 체념하거나 감탄한다. 이번에도 혼자 온 아주머니께 사진을 부탁했다. Dslr을 들고 있으셔서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사진을 찍어드렸다. 몇 번을 찍었는데 마음에 안 드시는 눈치였다. 속으로, 나 정도 되는 포토그래퍼가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나름 밝기도 조정했는데 말이다. 마지막 사진도 그냥 체념하시는 눈치였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뒤돌아서 사진을 확인했는데 내가 바로, 사진을 못 찍는 외국인이었다. 날씨가 안 좋은데, 어떻게 나도, 오스카 와일드도 모두 선명하게 나오게 찍었는지. 심지어 비율도 좋았다. 나도 나름 신경 썼다고 했는데, 비벼볼 만한 실력이 아니었다. 반대 상황에 처하게 된 게 웃겼고, 아주머니께서 어느 정도 퀄리티의 사진을 원하셨는지도 살짝 이해할 수 있었다.

 참 모든 게 상대적이다. 외국인을 보며 신기해하지만 알고 보면 나도 외국인이고, 때로는 사진을 못 찍는 외국인이기도 하다는 점이 웃기다. 여행을 다니며, 짙고 풍성한 속눈썹, 금빛의 속눈썹, 얇지만 빛이 나는 머리카락, 때로는 꼬불꼬불한 머리카락, 엄청 높은 콧대, 눈동자의 색깔, 깊은 눈. 모든 게 너무 달라서 자꾸만 몰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물론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자꾸 시선을 빼앗긴다. 껍데기는 가라고 하지만, 껍데기에 불과한 주제에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보기만 해도 어떻게 이렇게 생겼을까 신기하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생각하는 외국인은 나를 외국인으로 생각할 거라는 점. 세상은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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