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지구는 없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조지프 라쉬(Tyler Joself Rasch)[알에이치 코리아, 2020]/나의 평점: ★★★★☆/생태, 환경 도서
작가 타일러 라쉬는 미국 버몬트주 출신의 인재로 한국에서 외교학을 공부하고 2014년부터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을 통해 유명해진 방송인이다. 한국어는 물론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및 수많은 외국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남다른 도전 정신의 실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저 한국말을 잘하는 똑똑한 외국인으로 인식되던 그가 한국어로 책을 출판했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환경부와 교육부가 선정한 우수환경도서가 되었다. 제목을 보면 마치 시나 소설의 한 구절 같고 프롤로그만 읽어도 환경과 생태에 대해 인류가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 수 있다.
기후와 환경 문제는 오랫동안 작가의 중요 관심사였고 2016년부터 WWF(World Wide Fund Nature 세계자연기금)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지구를 구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는 작가의 마음은 헌사에서도 드러난다.
‘나의 조카들, 레일라와 키어런의 미래를 생각하며’
후대를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미소가 지어지고 기후 위기의 비극은 다음 세대에나 가능한 일이라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작가는 분명히 말한다. 친구를 잃으면 새 친구를 사귀면 되고 돈이 모자라면 빌리면 되지만 지구에 빌린 것을 전혀 갚지도 않고 파산 신고를 해버리면 결국 인류는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지만 환경 문제는 다르다. 월세 안 내서 쫓겨나면 다른 집을 구해도 되고, 빌린 돈을 안 갚아서 친구 잃으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되지만, 지구에 빌린 것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어디로 쫓겨날 곳이 없이 목숨으로 갚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9쪽)
사람들은 흔히 장래 희망을 언급할 때 의사나 교사, 공무원 같은 확실한 직업군을 들곤 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뜻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잠시 감탄할지도 모른다. 혹은 ‘뜻은 좋지만 전문가나 지도자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하겠다니 정말 순진하군!’ 하며 황당해할 수도 있다. 서문에서 작가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일이 자신의 꿈”(p.17)이라며 소신을 당당하게 밝힌다.
기후, 환경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어렵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실제로 너무 설레발치는 것 아니냐며 작가를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타인의 공격에 주눅이 들지 않기란 쉽지 않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것이 환경 보호를 외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p.79)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채무자는 인간’(1장 제목)이라는 비유가 그 어떤 선전 문구보다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 책은 철저하게 지구 환경을 생각하여 제작된 책이다. 표지부터 일반 책과 색달라서 더욱 눈에 띄었다. 일반 서점에 놓인 책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띠지나 화려한 수식어와 같은 광고도 없었다. 흰 바탕에 지구의 하늘 선이 4분의 1 정도가 단아하게 그어져 있을 뿐이다. 한 줄로 충분히 가능한 제목이 굳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심지어 ‘두 번째’와 ‘지구는’ 사이에 한 줄 더 틈이 있어 한마디 한마디 음미하며 읽으면 생각하게 한다. 친환경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으며 반들반들하고 깔끔한 종이 대신 FSC 인증 종이(FSC 인증은 산림자원 보존과 환경 보호를 위해 국제산림관리협의회 Forest Stewardship Council에서 만든 산림 관련 친환경 국제 인증)를 사용했다. 한동안 재료비와 제작비가 많이 들고 복잡해서 친환경 방식을 수용하는 출판사 및 인쇄소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불필요한 종이 낭비와 에너지를 막기 위해 출판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친환경 출판을 포기하지 않았다. 말에 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무거운 주제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안일했고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온난화(warming)가 아니라 열탕화(boiling)로 가고 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정책 결정자와 이제껏 별 관심이 없었던 일반인이 읽는다면 작가의 진심 어린 통찰과 솔직한 언어에 설득되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집이 불타버리지 않도록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싶을 것이다.
단, 난민, 코로나, 미 선거, 패션, 헌법 등 기후 및 환경과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고 어려운 과학 용어와 통계자료 등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다. 5장 ‘푸른 산이 들려준 이야기’처럼 고향 버몬트와 자연을 따로 떼어 낸 에세이가 따로 나와도 좋을 듯하다. 혹은 후반 관련 주제의 픽션을 함께 언급한다면 아동 및 청소년층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예;<2℃ 기후 대재앙에 놓인 아이들>(엘런 그라츠, 밝은 미래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