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휴일, 명절, 주말 상관없이 북한에서 부양 쓰레기 풍선이 꾸준히 날아왔다. 관련 문자가 오는 횟수도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눈을 뜨고 있는 낮에도 잠자기 전에도, 심지어 새벽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순간에도 '삐빅' 울리며 상쾌한 아침을 방해한다.
첫애가 군대에 가는 순간부터 거의 매일 생각하며 관련 소식에 걱정도 하고 안심도 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어느새 9개월이 지났다. 아이는 입대 전 척추 문제로 병원을 드나들며 정신없이 준비했고 훈련병 시절에도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가 운동 중에 다치기도 하고 응급실도 가게 되어 상사에게 갑자기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아이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본인이 스스로 택한 결정이 아니었음에도 부모가 면회 갈 때 고생할 필요 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아이의 모습도 자꾸 떠오른다.
아이는 국방부의 시계가 여전히 굼벵이처럼 기어간다고 말하지만 우리 부부는 새삼 아이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잘 적응하며 성장함을 느낀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다니' 하면서 말이다. 아이 입대 시절 초기보다 나의 조바심과 불안함이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걱정되고 애잔한 느낌은 여전하다. 기특하면서도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단지 아이가 자라며 느끼는 나의 노쇠함과 세월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올해 추석 때였다. 군대에 있는 아이는 전화로만 조부모님께 인사만 드릴 수 있었다. 원래 우리 가족은 SNS 가족 단체방이 있어 중요한 일, 일상, 소식 등을 서로 주고받는다. 자대 배치 후로는 첫째도 군대에서 저녁과 주말에는 핸드폰이 주어져 내용을 확인할 수가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갈 무렵 안드레아가 말했다.
"아들, 시골 할머니 댁에서 네 사촌들이 다 너를 찾더라. 네가 없으니까 허전하다고. 특히 너의 수다가 그립다네. 게임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면서..."
"아, 그래요? 하하. 내가 가서 재미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에 웃긴다는 이모티콘과 함께 맞장구를 치면서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나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지만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한 면도 있었는데 커가면서 점점 밝아지고 모험을 즐기는 청년으로 자랐다. 외모가 변하듯 마음과 성격도 변하는 듯하다. 다정하면서도 유머를 즐기는 아빠를 닮아가는 모습을 느낄 때면 좋기도 하고 묘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존경하는 남편을 아이도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해서 흐뭇하고 감사하다.
얼마 전 아이가 두 번째 휴가를 나왔다. "엄마, 우리 점심 같이 먹을까? 이번에는 밖에서? 지난번에는 라면을 끓여 먹거나 시켜 먹었는데 이번에는 휴가 첫날 집에 오기 전부터 나를 설레게 했다. 남자친구이자 남편인 안드레아에게 받는 설렘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한때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시절도 있었다. 아이가 한창 사춘기일 때는 말을 거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어렵던 순간. 시간의 흐름과 치유의 감정을 받고 나는 혼자 유치한 감성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감사했다. 한창 친구가 좋고 자신의 앞날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청년이니 이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이런 경우 뭘 먹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함께 먹는 행위가 행복이니까.
집에 도착한 아이가 따로 건넨 선물도 있었다. 늦어진 휴가를 겨우 나와 자유를 느끼기도 부족했을 텐데 아이는 아빠, 엄마의 결혼기념일도 다가와 겸사겸사 샀다면서 작은 선물 꾸러미 두 개를 건넸다. 립스틱과 특산품 간식. 선물을 받는 순간도 좋았지만 다시 한번 바라보니 그때 당시에는 생각지 못한 아이의 배려를 알아차리게 되어 새삼 감동이 밀려왔다.
'아, 내가 카페인 때문에 커피랑 녹차 다 못 마신다고 한 말을 기억했네.'
전에 아이는 고민할 필요 없다면서 내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늘 녹차 세트를 주곤 했다. 평소와 다른 선물에 대해 내가 너무 확장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의식을 했든 하지 않았든 엄마에 대한 배려심이 녹아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고슴도치 엄마가 맞나 보다.
양서류나 어류, 곤충 상당수가 알을 낳고 생애를 마감한다. 새들은 종에 따라 다 자란 새끼를 찾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포유류까지 가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 커지고 오래간다. 그중에 인간은 최고일 것이다. 우리 역시 아이를 잘 키워 독립을 시켜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안다. 아이가 완전한 독립을 한다 하더라도 그립고 궁금한 것 같다. 과도기를 직접 겪어보니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 우리는 그 감정을 먹고사는 존재다.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발산하지만 그중 사랑의 감정을 가장 오래 느끼는 인간.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나 또한 부모님의 심정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간다.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함께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