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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Oct 29. 2024

서툴러서 불행했고 사랑해서 행복했다

『스토너』













스토너저자존 윌리엄스출판알에이치코리아발매 2015.01.02.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에이치 코리아, 2024) 영미 장편소설



미국의 작가 존 윌리엄스는(John Edward Williams 1922~1994) 미국 텍사스주 클락스빌 출신으로 덴버 대학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주리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덴버 대학으로 돌아가 30여 년간 문학을 가르쳤다. 『스토너』(STONER)는 1965년 처음 출간된 1965년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6년 재출간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소설은 미주리 대학의 한 영문과 교수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1891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여섯 살 때부터 소젖 짜기, 돼지 먹이 주기와 달걀 가져오기 등 부모의 농사일을 도우며 자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스토너는 아버지의 소망대로 대학에서 선진 농법을 배우면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미주리 농과대에 입학해 친척 집에 머물며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 어느 날 영문학 개론 수업 시간 아서 슬론 교수가 읊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을 듣는 순간 스토너는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느낀다. 이후 스토너는 영문학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지만 여러 실패와 좌절의 순간도 맞이한다. 전쟁과 친구들의 참전,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혼 생활과 직장 동료와의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스토너의 인생은 이대로 불운과 실패로만 가득 채워지게 될 것인가.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p.22) 슬론 교수의 질문은 스토너에게 진정한 자아를 인식하는 출발 신호가 되었다. 자아를 넘어 스토너에게 가장 의미 있는 사랑의 대상은 첫사랑 이디스도, 딸도, 연인 캐서린도 아니었다.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p.32) 영문학과 교육은 그가 어떤 고난과 실패의 순간에도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자 사랑 그 자체였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cannot be defeated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1952)>”와 같은 말을 외쳤을지도 모른다. 



작품은 미스터리처럼 급박하게 사건이 전개되지도 <오디세이아 Odysseia>(호메로스)처럼 전형적인 영웅의 입체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스토너는 ’평범하고 성실했다 ‘ 혹은 ’ 자기 일에만 빠져 산 불행한 사람이다 ‘로 치부하는 것도 맞지 않다. 어떤 기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삶의 굴곡 속에서 끝까지 변하지 않은 모습이 있다면 스토너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부모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바꾸었고 전쟁이 나자 친구들은 참전을 권했지만 자신의 소신에 따라 솔직히 거절하고 학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비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기회를 엿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세운 원칙에 어긋나면 타 교수(로맥스)의 협박과 부당한 대우에 끌려가지 않고 솔직히 표현했다. 



“난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좋은 교수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자네는 무식한 개자식일세.”(p.359)



스토너는 전체적으로 다양한 감정 속에 물 흐르듯 읽히지만 “초서나 베어울프가 나오는 중세 영문학사”(p.18)나 “고드윈의 숙명론이나 존 로크의 현상론”(p.217) 등 철학론 관련 용어가 나오는 장면도 있어 어떤 독자는 이런 내용이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혹자는 “작품의 원고를 읽고 흐느꼈다는 학생처럼 슬퍼하며” 스토너에게 동점심을 느낄 수도 있다. 이와 달리 스토너가 당하고 사는 모습이 답답할 수도 있다. 인생의 행복이나 희로애락에 관심이 있는 독자, 스토너처럼 영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소시민으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생에 의미를 두는 독자에게도 깊은 사유의 기회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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