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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Nov 07. 2024

함께 외롭게, 하지만 맛있게


비빔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비빔밥이 한국 음식을 대표한다거나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입맛을 돋우는 것은 물론이고 영양적으로도 균형 잡힌 식단이라고. 특히 외국인에게는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라는 속담에 어울리는 메뉴로 '비빔밥'만큼 적절한 추천 음식이 있을까 싶다. 



나도 비빔밥을 즐긴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시작했다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자주 먹다 보니 즐기는 메뉴가 되었다. 면과 빵, 정제당 식품, 튀김 등과 함께 한 세월이 거의 내 나이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 때문이다. 치질 수술을 하고도 늘 만성 변비에 시달리면서도 식단 개선이 아닌 변비약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니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고 어떤 식풍을 멀리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쩌다 손이 가더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내 몸이 느끼기에 맛이 없다고 느끼는 음식을 먹다 보면 오히려 강박이 생겨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도돌이표를 돌 듯 이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작심삼일이라도 계속 도전하면 된다고 했던가. 실패해도 건강한 식사를 생활화하고픈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달리다가 힘들면 다시 숨을 고르며 걸었다가 다시 뛰는 것처럼 하다가 힘들면 잠시 멈추거나 딴 길로 갔다가 다시 결심을 하고 체질 개선을 향해 다시 뛰어, 아니 걸어갔다.  



전에는 비빔밥을 일부러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집에서 가끔 이것저것 해 먹기 귀찮을 때면 있는 반찬을 다 꺼내다가 대충 섞어 먹으며 '집밥'식 비빔밥이라고 위로하며 먹었으니까. 그나마 비빔밥의 모양새를 갖추어 먹는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음력 설날이다. 시댁에 가면 어머님이나 형님이 정성껏 만드신 나물 반찬을 넣어서 이리저리 취향대로 넣고 비벼 먹었다.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니 즐기기보다는 연례행사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듯싶다. 



워낙 요리에 취미가 없고 다양하게 챙겨 먹는 데에 게으른 나는 최대한 많은 영양소가 담긴 음식을 한 번에 먹으려고 한다. 과자, 빵, 떡을 최대한 줄이려고 맛도 괜찮고 영양이 그나마 많이 치우치지 않는 음식을 찾다 보니 김밥, 샌드위치 등 채소가 조금이라도 든 음식을 자주 먹었다. 자주 먹다 보니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김밥 집을 알아보기도 하고 샌드위치의 빵을 호밀로 바꿔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매끼 채소를 한 바가지 이상 먹어야 한다고 하셨지만 내겐 너무 버거운 과제였다. 단기간이 아닌 평생의 식단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먹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의욕이 넘쳐 소스도 뿌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는 결코 토끼가 아니라는 말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지속력'이 중요하니 가끔은 샐러드용으로 나온 소스를 조금 뿌려 먹기도 한다. 그게 아예 못 먹는다고 포기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주말에는 안드레아(남편)와 외식을 하며 데이트 겸 맛집 투어를 다니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그는 나의 까탈스러운 식단 변화에 맞추고자 미리 비빔밥 집을 찾아내거나 오이 고추냉이 김밥 등 독특하고 맛있는 메뉴를 사 오기도 한다. 어느 날 안드레아가 추천한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시켰다. 밥 안에 들어간 채소와 양념, 달걀노른자가 너무 먹음직스럽고 예뻤다. 먹고 싶기도 하고 먹고 싶지 않기도 한 감정을 한 5초 정도 느낀 후 수저를 들었다. 먹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예쁘게 배열된 비빔밥의 배열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다. 그래서 반 정도는 비비고 반 정도는 고명 반찬을 하나씩 하나씩 밥과 번갈아가며 먹었다. 비빔밥이지만 비비지 않고 먹는 비빔밥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남편도 그렇게 먹고 있었다. 내게 맞추느라 좋아하지도 않은 음식을 시켜서 잘 못 먹나 싶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안드레아는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먹어? 비벼야 맛있지 않아?" 


"아, 그게 이렇게 하나씩 먹어도 맛있어. 재료의 고유한 맛도 즐길 수 있고 씹으면서 음미할 수 있잖아. 무조건 다 섞어버리면 빨리는 먹을 수 있는데 그냥 간만 맞추어서 볶음밥처럼 대충 먹는 기분이야."


"그래? 나도 그래.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바로 비비지 않고 이렇게 먹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속으로 과연 그럴까 괜히 내가 민망할까 봐 좋게 말하는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그냥 그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함께 나온 재료지만 꼭 비벼 먹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재료 하나하나의 개성과 특징을 감상하며 느끼고 체험하는 것도 식도락의 한 형태일 듯싶다. 외롭게 하나하나 먹어주는 것, 하지만 즐겁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덤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만 있다면 좋은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혹은 어떤 모임에서 우리는 모두 개성이 뚜렷한 비빔밥 재료이기도 하다. 때로는 서로 섞여 단합해야 할 때도 있지만 억지로 섞이기보다는 함께 있으며 서로 다양한 성격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래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한 재료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양쪽을 모두 경험하길 좋아하는 나는 어찌 보면 욕심쟁이일 수도 있지만 아직은 반반 모두 경험하고 싶다. 가끔은 홀로, 가끔은 함께, 외롭지만 고독을 즐기기도 하면서. 어떤 형태로 먹든 선택은 자유다. 그래도 이왕이면 나와 함께 하는 상대방도 비빔밥의 맛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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