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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어 원서

일탈은 이야기의 연료가 되어

『 CHOO CHOO 』

by 애니마리아


작품명: <CHOO CHOO>(번역서:말괄량이 기관차 치치)-THE STORY OF A LITTLE ENGINE WHO RAN AWAY(도망가 버린 작은 기차 이야기)


지은이: 버지니아 리 버튼 VIRGINIA LEE BURTON


출판사: FABER AND FABER LTD.


출판일: 1937년 미국 출판(최초), 2017년 영국에서 출판


2017 FIRST PUBLISHED IN THE UK(FIRST PUBLISHED IN THE USA IN 1937 BY HOUGHTON MIFFLIN COMPANY)


장르: 그림책



'TO MY SON, ARIS'


책장을 펼치면 이 책을 바치는 사람이 나온다. 아들이라는 단어가 주는 확실한 단서 외에도 눈에 띄는 그림.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듯한 소년이 하늘 어디론가 쳐다보는 눈빛은 호기심과 경이로운 심정이 드러난다. 마침 소년이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강렬하고 넓은 빛줄기가 무대 위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처럼 보인다. 그 조명 사이로 보이는 한 마디가 바로 작품 초반의 '내 아들, 아리스에게'라는 문구다. 조명 아래 소년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년 앞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고 있었을 것 같은 장난감 기차가 트랙을 따라 원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을 비추는 그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집중한 모습으로 그곳을 바라본다. 내용을 읽기 전에는 무슨 UFO라도 보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하지만 읽고 나면 소년은 무엇인가를 보고 있기보다는 어쩌면 뭔가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말이다.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1909~1968)은 193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작가다. 공과대 학장인 아버지와 음악가인 어머니로부터 사물에 대한 정확한 시선과 예술적 감수성을 골고루 물려받았다. 후에 예술 학교에서 수학하여 화가가 되었고 조각가와 결혼하여 두 아들(Aristides and Michael)을 두었다. 그림책을 구상한 것은 둘째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였다. 책이 아닌 만화에만 열중하는 아들의 모습에 만화보다 더 뛰어난 그림책을 손수 만들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했다. 아들이 그녀의 첫 번째 그림책을 철저히 외면했지만 버튼은 포기하지 않았다. 만화의 기법을 받아들여 긴박한 이야기와 다이내믹한 화면 구성을 접목하여 「CHOO CHOO」(1937년작/번역서:「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완성한다. 이후 여러 아동 그림책 작가로 활동했으며 <MIKE MULLIGAN AND HIS STEAM SHOVEL>(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KATY AND THE BIG SNOW>(케이티와 폭설) 및 THE LITTLE HOUSE로 칼데콧 상(1942)을 수상하였다.



번역서에는 기관차의 이름이 '치치'라고 되어있지만 원서 제목대로 원래 이름은 '추추(Choo Choo)'로 '칙칙폭폭'이라는 의성어이기도 하다. 추추는 작지만 아름다운 검은빛을 내는 기관차다. 사람들은 이 기관차의 멋진 자태에 감탄하고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발휘하는 운반 능력을 칭송한다. 하지만 사람과 화물을 가리지 않고 나르며 힘찬 종소리를 울리며 다니는 추추의 삶은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인다. 추추를 돌보는 사람 친구도 세 명이나 있다. 기관차 기사 짐, 화부(火夫) 올리, 승무원 아치볼드. 이 세 사람이 어느 정류장 작은 식당에서 잠시 쉬는 동안 추추는 일탈을 감행한다. 일생일대의 기회라 여기고 계획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지만 추추가 기대한 길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펼쳐지는데......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그림의 색채는 흰 종이에 검은색투성이지만 그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역동적이고 그 어떤 수채화보다 화려하다. 동양의 수채화에서 느껴지는 명암이 생명체의 심장을 연상케 한다. 지면의 크기에 상관없이 화면을 꽉 채우는 원근감과 세밀함이 고속으로 기차와 함께 달리는 착각을 일으킨다. 또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추추의 모습을 뒤따르는 그림자처럼 서술되는 글의 문단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기차의 움직임처럼 지그재그로, 마름모꼴로, 변형된 사각형이나 곡선의 트랙으로 바뀌어 그림 및 이야기 속에 푹 빠지게 되는 독자도 꽤 있을 것이다.



On and on went


CHOO CHOO


out of the city


through the suburbs


and into the country.


It was getting dark!...


She had lost her way!....


She did not have much


coal or water left as she


had lost her tender......(in the middle of the book without pages)



계속해서


추추는 나아갔어요


도시 밖으로


교외를 지나


시골 쪽으로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죠!...


추추는 길을 잃었던 거예요!....


남아있는 석탄과 물은


이제 거의 없었죠


탄수차를 잃어버렸거든요. (본문 중에서)




산업화가 한창이던 세상을 대변하는 것처럼 석탄의 질감이 거칠지 않고 오히려 따스하고 풍부하게 느끼지는 이유는 뭘까. 아이를 위한 이야기, 그림책을 손수 제작하는 엄마의 마음, 예술가의 혼이 담긴 듯한 정교한 정성과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한 번쯤 일탈을 꿈꾸고 기차나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 독특한 미술 기법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글밥이 꽤 있는 편이고 몇 개 단어의 쓰임은 오늘날과 다른 경우도 있어 사전 찾기가 좀 번거로울 수는 있다. 바꾸어 생각하면 풍부한 영어 어휘력을 키울 수 있어 20세기 초반의 배경과 시대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보는 만큼 숨겨진 이야기, 시대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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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 Choo저자미등록출판 Faber & Faber발매 2017.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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