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험 기간에 시도하지 않은 일이 몇 가지 있다. 억지로 공부시간을 늘리지 않았고 복통을 겪은 후로는 각성 효과가 있다는 M 음료도 마시지 않았다. 커피도, 녹차도 마시지 않았다. 수면 시간을 억지로 줄이면 그날은 공부를 더 할 수는 있어도 집중력은 떨어졌고 그 여파가 며칠씩 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편두통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부터 몸은 마음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고통과 두려움이 있을까? 내게는 편두통이 그런 요인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고통 가운데 가장 끈질기고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는 존재. 늘 내 안에 도사리고 있다가 터져 나오는 화산. 조용한 사화산이 된 듯해도 뜬금없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무서운 고통. MRI 검사로도 나타나지 않고 증거도 남기지 않아 마치 꾀병처럼 보이기도 하는 얄미운 존재. 약이 있지만 통증이 사라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약국 약은 전혀 듣지가 않고 처방받은 약으로 연명해야 한다. 약 여분이 있나 늘 확인해야 하는 삶. 세상에 그보다 더한 고통이나 심한 병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내게는 편두통의 짓눌림이 느껴지는 시간, 그중에서도 약이 바로 듣지 않은 순간이다. 나의 시계만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순간은 몇 시간이 되고 운이 나쁘면 종일 걸리거나 며칠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길게 갈지 짧게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약이 듣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새벽에 아프면 위가 견디기 힘들어할 줄 알면서도 빈속에 약을 털어 넣는다. 잠시 후 다시 약을 복용하고 문을 닫고 커튼까지 내려 빛을 철저히 차단한다. 방을 암실로, 감옥으로 만들고 스스로 나를 가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용이 없음을 알면서도 쓸데없는 원망을 하기도 한다. 그날은 억지로 시간을 낭비하는 날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수면 시간과 컨디션을 살펴본 결과 내게는 7시간이 가장 맞았다.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보면 최소 6시간, 7시간에서 8시간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중간에 속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 일찍 자고 싶지만 올해 아이의 귀가 시간이 불규칙하게 늦어 선잠을 잘 때가 있었다. 혹은 남편과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간혹 친척 모임과 같은 일로 평소 취침 시간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기도 하다. 새벽이나 아침에 정신이 더 맑지만 완전히 규칙적인 기상 활동을 하지는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늦게 자도 무조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의 부지런함을 따라가다 보면 편두통과 같은 불청객이 찾아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오는 통증만도 감당하기 어렵기에 후천적 위험(두통 유발 식단, 수면 제한)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루를 희생하면 사나흘을 버려야 하는 어리석음을 멀리하고 싶어서다.
공부는 아무리 미리 시작하고 계획을 잘 세워도 늘 아쉽다. 계획대로 습득이 되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며 불안과 긴장이라는 감정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세월과 한계를 실감케 하는 변화가 많았다. 책과 자료를 볼 때마다 분명히 공부한 내용인데 두 번, 세 번 보는 데도 기억이 나질 않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꽤 많았다. 올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많을 정도로 시력이 많이 나빠지고 원시용, 근시용 안경을 수시로 챙겨야 하며 녹내장으로 관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날 좀 더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지만 그냥 책을 덮었다. 전과 달리 요즘은 알람으로 6시간 이내로 잠을 줄이지는 않았다. 알람 없이 수면을 청하고 눈을 뜨면 대략 7시간 정도 지나 있다. 정상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는 하다. 기도를 짧게 올리고 세수를 하려다 말고 녹내장 약을 먼저 투여한다. 반대의 경우 약 가루가 눈 주위에 석회처럼 쌓여 많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시야를 거의 가릴 정도로 방해 요소가 되는 물질이 붙어 있어 약을 넣고 씻으려고 한다. 시계를 보니 5시도 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런 경우 은근히 자극하는 두통이 있기 십상인데 다행히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어느 날 새벽의 시간을 얻게 되었다. 잠이 든 지 5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전에는 시간을 번 것 같아 기뻐한 적도 있지만 이제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일찍 깬 만큼 낮에 찾아올 졸림과 나태함과 흐트러질 집중력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어느 시점에서 시간을 얻으면 희한하게도 유사 시간을 반납하는 일이 생긴다. 마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수면의 차이는 결국 0이 된다.
그래서인지 잠에 집착하기보다 깨어있는 시간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양보다는 질에 무게를 두고 내 뇌에 충분히 휴식을 주면서 내 몸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싶다. I like summer를 외치며 무리하다가 자신의 몸이 녹아버리는 올라프(영화 겨울 왕국에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뜨거운 태양이 아무리 좋아도 무작정 달려들며 가까이 하기보다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몸이 녹지 않는 것처럼 잠을 대하는 건 어떨까. 평균에 속하는 평범함이 싫어도 최소한 극단에서 오는 고통은 줄일 수 있으니.
적정선을 지키는 것, 필요하지만 이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단순히 욕심을 버린다고 될 문제일까. 꿈이 있고 의지가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어느새 물이 넘치고 균형을 지키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 잠에도 중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