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 취미 생활 1 (최강야구)

by 애니마리아




사춘기 시절 이후 이렇다 할 새로운 취미나 덕질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 간은 남편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콘서트에 함께 간 적은 있어도 순수한 내 의지로 빠져본 분야가 별로 없었으니. 몇십 년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파고든 분야가 있다면 외국어, 특히 영어 관련 책을 읽거나 공부 및 회화 연습뿐이다.




정치나 사회, 특히 스포츠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돌이켜 보면 재미없어서라기보다 아는 게 없어서 겁을 냈던 것 같다. 조금 건드려보고 어렵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고는 한 성격 탓에 못하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척한 게 아닌가 싶다. 기본 사항이나 배경지식이 없으니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스포츠의 경우 간헐적으로 관심을 두고 지켜본 경우도 있었으니,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 대회와 같이 큰 행사가 있을 때에 한정되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나는 홈런을 제외하고 야구의 규칙과 경기 규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제 경기에 가서 보아도 재미가 없고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아도 지루하기만 했다. 병살타가 왜 병살타인지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파악이 안 되었고 안타와 파울의 차이를 구분하지도 못했다. 분명히 타자가 잘 친 것 같은데 파울이라니. 볼은 뭐고 타율은 왜 소수점으로 복잡하게 왔다 갔다 하는지, 도대체 번트는 뭐고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외계어 같았다. 문자만 한글로 표기한 타국의 언어를 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왓 이스 댓 이그잭틀리(What is that exactly?)’처럼 말이다.




그러다 야구에 빠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야구 자체보다는 예능 야구 프로그램에 빠졌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경상도 출신인 남편은 원래부터 S 팀을 응원하는 보통의 팬이다. 어느 날 텔레비전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최강 야구’라는 프로그램을 중간에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계속 내용과 흐름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미 은퇴한 선수들이 다시 모여 야구를 하는데 얼핏 들어 본 선수들의 이름과 팀이 귀에 들어왔다. 게다가 전직 야구 선수인 김선우 해설 위원과 정용검 캐스터의 케미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아나운서 출신인 정용검 캐스터의 흡입력 있는 목소리 톤과 재치, 설명이 돋보였다. 유머와 정보도 적절히 섞여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보여 주는 방식이 참신했고 나와 같은 야구 문외한도 충분히 즐길 만한 요소로 작용했다.




애매한 경기 흐름이나 용어 따위는 바로 옆에서 함께 시청하는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혹여 휙 지나가는 화면에 물어보기 애매해서 놓친 부분은 그다음 날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면서 궁금증을 해결하게 되었다. 조금씩 야구의 생리에 눈을 뜨면서 재미있어졌고 타율이니 출루율, 타자와 투수, 야수, 유격수, 선수의 특징, 매력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료한 일상을 달래주는 느낌도 받았다. 월요일 밤 10시 30분이라는 늦은 시간에 시작해 12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아 중간에 못 보고 자는 경우도 많았지만 때로는 경기의 흐름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졸음과 싸우며 끝까지 보느라 수면 패턴이 깨지기도 부지기수였다. 내심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반성을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해를 넘기게 되자 최강야구팀의 선수들 특징을 거의 다 알게 되었고 휴가, 훈련, 준비 등으로 프로그램이 몇 달 동안 중단되자 재미있는 드라마를 못 볼 때의 고통 비슷한 감정까지 생기는 듯했다. 방송은 22년에 시작했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한 것은 23년 중간 어느 시점부터였다. 올해 초부터 직관(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통하는 말로 대중매체를 통한 중계가 아닌 경기장에 직접 가서 관람한다는 의미)을 한 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음원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도 좋지만 직접 분위기를 느끼고 가수와 교감하며 진짜 목소리를 경험하고픈 팬의 마음처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서너 번의 도전에도 직관 표를 예매할 수 없었다. 임영웅 콘서트 예매는 세 번이나 성공한 남편도 최강 야구 티켓은 넘사벽이었나 보다. 하지만 포기할 찰나, 남편은 회사 동료의 도움까지 받아 간신히 예매에 성공했고 덕분에 변두리 자리긴 해도 직관을 두 번이나 가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독립 야구팀 1위에 해당하는 ‘연천미라클’과의 경기였고 두 번째는 잘하기로 유명한 ‘덕수고등학교 야구팀’이었다. 각각 9월 말과 10월 초였는데 방송이 날 때까지 절대 함구하라는 주최 측의 당부가 있어서 갔다 온 사실조차 기록에 남길 수 없었다. 경기 결과는 물론 행사 분위기나 내용 누출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혹시 실수로 언급할까 봐 한참 조심했다.




하지만 직관 후 2주나 3주 후면 방송에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한참 지난 11월 말이 돼서야 해당 직관 경기가 방영되었다. 우려했던 대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서 세세한 경기 내용이나 일화를 기술하려니 중간에 본 다른 경기와 겹쳐지며 헷갈리기만 했다. 다행히 그날의 몇 가지 핵심 내용을 메모해 두긴 했지만 공개 시점이 너무 길어 그 당시의 설렘과 흥분의 감정이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대신 진정하고 좀 더 절제된 감정 상태로 그날을 묘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김밥을 사 들고 물도 챙겨서 입장한 순간 받았던 응원 도구가 있었다. 앞뒤 흰색과 청색을 바탕으로 최강 야구 마스코트와 글자가 새겨진 매끄러운 응원 도구. 접었다 펼쳤다 하기도 하고 접은 채 두드리면 그 자체가 신나는 응원 봉이 되기도 하였다. 그날 성시경이 애국가를 부르러 나왔다. 먼 거리였지만 고척스카이돔 운동장을 가득 메우는 발라드 황제의 목소리는 참으로 웅장하고도 감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연예인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더 신기했다. 바로 뒤이어 2PM 멤버(이름은 모르겠다)의 시구가 있었고 남은 자리 없이 관중과 팬으로 가득한 현장의 열기가 달아올랐다. 특히 그날은 연예인 닮은 청년들 100여 명이 모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특별 댄스 공연을 하기도 했다. 초보 야구 관객의 입장에서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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