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고, 야구에 대해 조금 알고 나니 경기를 보는 게 재미있어졌다. 종종 상용 구로 인용되는 말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와 같은 요기 베라(뉴욕 양키스의 포수)의 명언도 더 마음에 와닿았다. 객관적인 통계와 확률을 뒤집는 기적을 증거 하는 희망의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강야구팀은 고교 드래프트 1위 팀인 덕수고 만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확률적으로도 최강야구팀 승리 확률은 단 30%였고 최근 팀의 젊은 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대학생 용병 선수가 두 명과 주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힘겹게 승리했다.
한 야구인의 말은 이후 인간이 관여한 여러 분야에서 노력과 성실, 끈기에 대한 가장 위대한 찬사가 되어 자연스럽게 인용되기도 한다. 누가 봐도 강팀과 약팀의 축구 대결에서 밀리고 또 밀리면서도 뒷심을 발휘하여 역전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단결의 힘과 개개인의 근성이 시너지가 되어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하지 않은가. 2002년의 월드컵 때처럼. 통계와 경험치는 객관적인 예상을 가능케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일 또한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구경 삼아 야구장에 갔을 때는 재미도 없었고 심지어 경기를 보다 말고 힘들어서 그냥 나오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체험도 느낌도 많이 달랐다. 나의 수호천사인 남편은 또 다른 천사 동료의 도움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고 그분은 지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안경을 쓰고도 경기의 흐름을 보기 힘든 4층의 가장 끝 자리이긴 했지만 파도타기와 응원의 열기, 중간에 행복한 표정의 연인, 부부, 친구, 아기와 함께 온 가족의 모습, 코미디언과 같은 연예인의 함성과 애국가를 들은 경험도 좋았다. 한국인은 흥이 있는 민족이라지만 노래나 춤만 즐기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각박한 삶과 어지러운 사회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웃음과 희망을 찾으려 애쓰는 해학의 민족이다.
고척스카이돔에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관중이 각자 응원하는 선수의 유니폼이나 이름을 새겨 입고 다니는 모습도 신기했다. 아무리 더워도 반팔 위에 덧입었고 아무리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어도 속에는 야구 응원복을 착용하고 온 팬들이 대다수였다. 남편이 물었다.
"최강야구 중에 누구를 응원할 거야? "
"음, 글쎄."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이대호와 같은 대형 슈퍼스타 선수 유니폼이 눈에 띄었고 최근에 인기 급상승 중인 임상우 선수 유니폼도 많이 보였다.
"다 좋지만 그래도 난 최수현 선수."
"최수현? 왜 굳이 외야수를?"
"화려한 스타도 젊은 인기 선수도 아니지만 꾸준하고 성실해. 실수도 하지만 가끔 팀에 보탬이 되는 플레이도 곧잘 하고. 소박한 미소도 멋있고."
그러고 보니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 내며 노력하는 선수에게 마음을 더 쓰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나의 평소 지향 태도이기도 하다. 주인공도 멋지지만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의 실력과 존재감을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부상으로 방송 합류 후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코치 및 브리핑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이택근 선수도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무려 455일 만의 선발 복귀, 이택근 선수의 호수비나 안타, 출루를 보는 순간은 언제나 벅차다. 그런 순간에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상대팀을 분석하고 최선을 다해 팀에 영감을 불어주는 행동, 후배 선수들을 진심으로 챙기고 힘을 주는 말들, 막상 후배가 잘했을 때 아낌없이 손뼉 치며 잘했다고 칭찬하는 모습 등은 참 인상적이었다.
편집의 힘이 크겠지만 분명 그들의 모습을 통해 끌고 미는 의리와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내가 최강야구에 빠진 이유 중 하나이다. 감동과 재미, 교훈도 있어 많은 사람이 최강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느 정도의 가식은 삶의 맛있는 양념이 되어 진실과 친구가 되고 팬들의 시선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어 준다. 취미조차 우물 속에 숨어 누리는 사람조차 스스로 나오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