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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여정 중에 추억 만들기

(포항, 그날을 떠올리며)

by 애니마리아


포항 바다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이날은 친척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려 간 날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절을 하고도 한낮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했다. 어차피 하룻밤을 지낸 후 발인, 장지까지 함께 하기로 작정하고 간 길이었으나 아직 사람이 적은 빈소에서 다른 친척을 기다리는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남편의 외가 식구가 대부분인 상황이라 다소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물론 친척으로서 슬픈 여정을 함께 할 각오로 따라나섰지만 나는 그 자리에 머무는 어색함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그런 나를 생각해서였을까. 이번에는 특히 에너지 넘치는 딸아이가 동행해서인지 안드레아는 기나긴 밤을 보내기 전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차를 타고 포항 밤바다를 보고 오기로 했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었지만 포항의 밤바다는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상대적으로 남쪽에 있긴 하지만 마치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 해변을 따라서 있는 야자나무가 눈에 띄었다. 한적한 겨울밤바다를 눈에 담으며 거닐다 보니 슬픈 여정 중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딸, 가까웠던 친척의 부고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안드레아, 애틋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부녀의 모습, 힘찬 모습으로 달려오다가도 부끄럽게 물러서는 파도. 포항의 밤바다 여기저기를 수놓는 등대의 불빛, 가로등, 이국적인 풍경, 추우면서 따뜻한 모순적인 밤공기는 내가 상상하는 대로 세상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듯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우리 세 사람의 느낌은 다 달랐을 것이다. 딸아이는 답답한 곳에서 잠시 숨을 쉴 기회, 사진 한 컷 남길 수 있는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나라에 이런 곳도 있구나 감탄하면서도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방문은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문득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다 말고 모래사장을 걷다가 야자나무를 만져보기도 하는 안드레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는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안드레아가 겨우 초등학교 5학년 때, 생활이 어려워 포항으로 내려와 생선을 팔며 고생하셨던 어머님을 도왔던 때가 생각났을까. 아니면 처음으로 홀로 집을 떠나 포항의 한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시절을 떠올렸을까. 외롭고도 간절했을 그 시절, 포항은 그에게 특별한 장소 가운데 하나라 추측해 본다.



어느새 밤이 깊어 다시 상갓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슬픈 여정의 시간에 들린 포항의 밤바다 산책은 액자 속에 비친 또 다른 사진처럼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박혔다. 저 멀리 산 그림자가 어둡고 거대하게 비추어도 무섭지 않았고 저 너머 파도가 넘실대도 두렵지 않았다. 슬픔 속에 벅차오르는 행복이 막연히 느껴졌다. 누군가를 보내드리는 길은 한동안 밥 한 끼 먹기 힘들었던 우리 가족의 작은 여행이 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 가족의 작은 여행이 되었다.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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