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살 수 있다면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by 애니마리아


"어서 나가."


사나이는 말했다.


"부탁입니다. 물이라도 한 모금."


"쏘아 버릴 테다."


28쪽







허름한 차림, 무서운 인상의 복역자를 볼 때의 공포를 이해한다. 문전 박대는 아닐지라도 경계의 눈빛, 두려움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발장은 협박하지 않았다. 피해를 준 것도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해 물 한 모금의 배려를 부탁했을 뿐이다. 정중하게. 50km를 내리 걸으며 굶주리고 지친 사내, 장발장에게는 멸시와 무시, 학대만 있을 뿐이었다. 잠자리는커녕 물 한 모금 얻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간을 믿을 수 있었을까.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여기며 타인에게 정을 베풀 수 있었을까. 배고픔에 빵 하나를 훔친 대가는 충분히 치렀음에도 그가 대면한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다. 죽은 후가 아닌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겪어야 할 고통의 세상.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불행을 없애고 빈곤을 추방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502쪽)고 말했다. 가난은 문명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아닐까 싶다. 역사에서 일어난 불행과 갈등은 가난에서 비롯된 경우가 상당하다. 오죽하면 성경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의 비유가 나오겠는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자비를 설파하는 불교도 가난 때문에 짊어져야 할 무게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목책을 넘었으나 이제 갈 곳이라곤 아무 데도 없었다. 개집에서조차 쫓겨난 몸이었다. 거리에 나오자 그는 돌 위에 주저앉으려다가 스르르 쓰러져 버렸다. 이 순간 그곳을 지나던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개만도 못하다!"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29~30쪽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기분,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태어나서부터 힘겨운 상황에서 자라고 헤쳐 나가야 할 가난과 멸시의 삶 속에서 희망과 기쁨과 같은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을 테다. 오히려 악에 받쳐 타인을 증오하고 세상을 저주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난이 반드시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므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무슨 능력과 공헌으로 누구는 부잣집에서 누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가의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한때 세상에 대한 원망, 배고픔, 빈곤의 고통으로 무뢰한의 삶을 살 뻔했던 장발장.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 코제트와 마리우스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느님이 친절하시다는 증거는 이 아이가 와준 걸로도 알 수 있지."

492쪽



신, 친절, 증거, 아이 중에 장발장을 이토록 극적으로 변화시킨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독자 가운데는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결말, 그가 듣기 좋은 말로 개과천선하는 모습으로 신을 마주하는 장면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필자는 최고의 장면은 마지막이 아니라 첫 장에서 미리엘 주교와 장발장의 만남을 다룬 부분이라 생각한다. 신을 위한 봉사와 의식에 쓰는 은식기를 훔친 사람에게 징벌과 훈계가 아닌 믿음을 주고 친절을 베푼 주교에게 느낀 선(善)의 의미를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실제로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준 방면이기에. 미리엘 주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장발장은 제2의 테나르디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빅토르 위고(1802~1885 프랑스 브장송)는 종교를 수단으로 교화시키려는 작가는 아니었다. 작품에 따라 성직자는 주인공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기도 하고(<레미제라블>), 오히려 욕망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상(<파리의 노트르담>)을 대표하기도 한다. 위고의 실제 삶 또한 모순과 불완전한 모습이 있었다. 그에게는 자기 과시 욕망, 명예욕, 재능 표현, 타의에 의한 추방 및 자의로 선택한 망명, 여성 편력 등의 자율 행위가 있었고 딸이 청춘의 나이에 죽은 비극도 있었다.



19세기 프랑스라는 방대한 서사시와 개인의 구구절절한 운명과 인생을 서정적으로 때로는 격렬한 파도처럼 그린 이 소설은 역사와 허구라는 씨실과 날실의 작품이다. 인류가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거친 발길질을 하기도 한 태피스트리이기도 하다. 소설 속 혁명은 실제로 프랑스혁명 이후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사이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여 작품의 플롯을 더욱 사실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마리우스와 그를 싫어했던 장발장 사이에서 정치색은 중요하지 않았다. 작품은 혁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정치색이나 영웅 놀이가 아닌 인류애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무와 정의(定義) 사이의 모순과 갈등 사이에서 괴로워한 자베르 경감, 현실 속 악마, 진정한 지옥을 보여준 테나르디에 부부, 인간적 본능과 고뇌 속에서 선택을 내리고 노력하는 장발장을 통해 위고는 마치 이렇게 질문하며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듯하다. 가난하게 살다가 힘겹게 죽어간 장발장이 가장 불쌍한 사람인가. '진정 불쌍한 사람이란 어쩌면 선을 믿지도 않고, 친절을 베풀지도, 아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영혼의 빈곤자가 아닌가'하는 메아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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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저자빅토르 위고출판밀리언셀러발매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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