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설 연휴가 긴 편이었다. 연휴가 긴 게 좋은가 짧은 게 좋은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조건과 상황이 모두 다르므로. 길면 오래 쉴 수 있어 좋은 사람도 있고 길면 일을 할 수 없으니 수입이 줄어 싫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만약 내게 연휴가 길어서 지루하거나 힘드냐고 묻는다면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행복한 투정일 뿐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겐 끔찍한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영업을 하는 가게가 몇이나 될까. 소수의 식당과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생각나는 곳이 없다.
사고는 연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병원은 연휴를 가린다. 어쩔 수 없다. 병원도 사람이 운영해야 하는 곳이고 그분들도 쉬어야 한다. 물론 응급실이 있다. 하지만 응급실이 항상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거부당할 수도 있고 도구와 인력이 없어 일을 진행시킬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에 겨우 올라탔으나 차가 조금만 덜컹거리거나 방향만 틀어도 극심한 통증에 호흡도 잘되지 않았다. 오른팔을 부여잡고 견뎠지만 소용이 없었다. 겨우 읍내에 있는 유일한 보건소에 갔지만 젊은 의사분이 당직을 서고 계셨고 기본 엑스레이 기기 하나밖에 없어서 검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금이 살짝 간 것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에 가서 MRI나 CT를 찍어볼 것을 권했다. 이 검사를 할 병원은 최소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을 달려야 찾을 수 있는 소도시로 가야 했다. 병원을 겨우 찾았으나 응급실에는 나와 비슷한 환자가 넘쳐났다. 대기 또 대기의 연속이었다. 궂은 날씨에 낙상 사고 환자만도 엄청났다. 나처럼 팔을 다친 사람, 다리를 다친 사람, 가장 심각한 경우는 머리를 다쳐 온 사람이었다. 뇌진탕으로 혈관이 터졌을지도 모르니.
가는 데 걸리는 시간, 대기하는 시간만도 거의 두 시간은 넘은 듯했다. 좀 더 정밀한 CT로 찍은 오른팔의 모습은 끔찍했다. 그곳도 단 한 분의 의사 선생님이 수많은 환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내 팔은 단순히 금만 간 것이 아니라 아예 부러져서 뼛조각이 떨어져 사라진 곳도 있었다. 이가 빠진 사기그릇처럼 깊게 홈이 파여 어디에 박혀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상완골(어깨 아래의 팔 위쪽의 뼈) 골절 부위가 잘 부러지지 않는 부위인데 부러졌다며 의아해하는 선생님의 소견에 더욱 겁이 났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연휴가 끝나면 남편은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장기간의 수술 및 치료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소견서를 받아 귀가를 하기로 했다. 머나먼 귀갓길은 더욱 멀고 험했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길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남편은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5시간에 가까운 귀향길이 시작되었다. 진통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통증과 함께. 그렇게 새해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병원 찾아 삼만 리'가 시작되었다.
집 근처 병원에 도착할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후였다. 응급실 행, 다시 대기. 당직 의사는 서류만 훑어보더니 보나마다 수술이 시급하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당장 수술이 불가하다고 했다. 종합병원이지만 연휴 기간에는 수술을 할 수 없다고, 연휴가 끝나도 이미 예약된 수술 일정이 꽉 차서 주말이 지나야 다시 상의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프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인데 수술 여부를 알기까지 사나흘을 기다리고 입원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명절 때는 의사도 쉬어야 한다는 게 이해는 가면서도 큰 사고로 다쳤는데도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다. 이곳도 이렇다면 서울의 어떤 대형 병원도 사정은 비슷할 것 같았다. 원래 이런 것인가, 의료 대란의 여파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 점점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