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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음악 미사의 은총

by 애니마리아


최근에 입안이 헐었는지 양치할 때마다 통증이 있어 잇몸 치약이 필요했다. 종로에 약국 타운이 있어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어느 주말 산책 겸 데이트 코스로 종로에 가 보기로 했다. 게다가 근처에 광장 시장도 있다고 했다. 좀 붐빌 것이라 예상했기에 남편과 나는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첫 번째 방문지는 광장시장. 서울 한복판이고 워낙 알려진 시장이어서인지 오고 가는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인데 미로처럼 빽빽이 좁은 길 사이사이로 각종 간식과 상점, 작은 가판대 식당으로 채워진 모습이 여느 전통적인 시장과는 꽤 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관광지로 유명해서인 듯싶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호떡 가게는 시장 입구에서부터 긴 줄이 나 있어서 쳐다보기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종 과일 음료 가게와 김밥 및 국수 간식 집과 같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기준으로 맛은 보통이었으나 처음 한국 음식을 맛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른팔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오고 가는 사람에 치이는 곳에서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운 후 시장을 빠져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남편이 봐 둔 '엄마 약국'. 보령 약국이 크고 잘 알려져 있으나 엄마 약국의 약사분은 큰 약국 못지않게 필요한 약품을 잘 관리하고 계셨다. 치약 하나를 고르는 데도 장단점을 친절하게 알려 주셔서 기분 좋게 몇 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약국을 나서니 저만치 성당의 십자가가 보였다. 대개 토요일 미사는 6시나 7 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종로 성당은 5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그곳에 대해 미리 알아보지는 않았다. 그저 서울에서는 그래도 오래된 성당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작고 소박한 입구에 비해 지하로 통하는 성전 사이로 성당을 소개하는 듯한 액자와 문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순교지 가운데 한 곳을 기념하는 성당이었다. 새남터 성당, 서소문 성당, 절두산 성당(절두截頭: 머리를 자르다는 뜻으로 유래) 등은 이름에서도 순교와 박해가 느껴져 익숙했지만 종로성당도 순교지인 줄은 몰랐다. '포도청 순교 성인들 및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주보성인'이 이 성당의 특별함을 더해주었다. 한때 명동성당의 관할 구역이기도 했고 1955년 서울 대교구에서 19번째로 설립된 성당이기도 하다.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전을 들어서는 입구 한편에 성모님 상과 초 봉헌 대가 있었다. 미사 중에 무릎을 꿇는 의자 기구(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가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성모님 상은 외부에 있기 때문에 기도대가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새삼 독특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지하의 성전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미사 시간이 되자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자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미사의 기도문은 물론 1 독서, 2 독서와 많은 미사 의식 암송 부분이 찬양 및 성가대 음악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내가 원래 다니는 성당을 비롯해 타 지역 성당 대부분은 전례 의식이 일치하는데 성가와 노래 양식으로 미사 참여 부분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한 음 한 음 정성 들여서 천천히 기도문을 노래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독서 신자들도 오르간을 치시는 신자분, 심지어 신부님까지 노래(찬양) 실력이 출중하셨다. 성악가 출신이 아닌가 할 정도로 화음과 리듬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실수 없이 진행하시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기도문 하나만으로도 성가로 하면 그냥 낭독하는 것보다 몇 분 더 걸린다. 미사의 대부분을 성가로 진행하니 실제로 재 보지는 않았지만 보통의 미사보다 3분의 1은 더 걸린 것 같았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 온 나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색다른 의식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기회도 흔치 않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신부님께서 문밖에서 신자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몰래 와서 들킨 외지인처럼 쑥스러운 표정으로 목례를 했는데 신부님은 환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시고는 인사말을 건네셨다.


"팔을 다치셨군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잠시 길어진 미사 시간에 불평스러운 마음을 잠시나마 간직했다는 게 죄송했다. 신부님의 신의 작은 대리인이라는 생각에 내 생각을 들킨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불편한 몸으로 이곳까지 와 주어서 고생했다는 말씀, 그 한 마디 위로로 여정의 피로가 상당히 풀리는 듯했다.


밖으로 좀 더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성당의 미사 일정이 적힌 포스터가 있었다. 사실 이러한 성 음악 미사는 매주가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특별히 성가 미사를 위한 신부님과 신자분들을 초빙해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왔지만 우연이 필연이 된 듯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성당을 나설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성지 순례가 되었고 귀한 성 음악 미사를 알게 되었고 체험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또 그 사랑을 받들어 살린 누군가의 봉사와 배려를 통해 받은 은총이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이웃에 도달하면 좋겠다. 나만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은가. 내일 아침은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Someone is praying for you

So when it seems

you're all alone,

and your heart will break in two

Remember someone is praying for you.


누군가 널 위하여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에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from 'Someone is praying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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