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수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유럽 최고의 "지혜의 대가"다. 그의 책은 평생 곁에 끼고 다녀야 할 인생의 동반자이자,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면서 음미해야 한다.'라고.(<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수업>에서)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an 1601~1658)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대철학자로 작가이자 신부이다. 대표작으로 <세상의 참모습>, <현명함의 기술>,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 등이 있다. 실용적 지혜와 처세술을 강조한 철학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니체, 쇼펜하우어, 처칠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특히 쇼펜하우어는 그라시안의 철학이 자신이 강조한 실천적 지혜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맞는다며 그의 저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사항을 미리 알지 못한 채 SNS에 떠도는 그의 말에 대한 현대인의 해석을 부분적으로 접했다. 날카롭고도 깊은 통찰이 느껴져서 짧은 문구가 아닌 맥락이 있는 내용을 좀 더 접해보고 싶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수업>(발타자르 그라시안/정영훈, 김세나 옮김)가 순수하게 발타자르의 글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엮은이의 말'을 보면 쇼펜하우어가 초반에 번역할 때 상당 부분이 현대 독일어 어법과 다르고 내용의 일부가 너무 상징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담겨 있는 이유로 번역을 했어도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논어>의 해석본을 읽을 때처럼 제목은 마치 검은 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지듯 강렬하다. 어디까지가 주석이고 어디까지가 그라시안의 첨언이 들어있는지 정확히 구분이 가지는 않는다. 한글로 번역한다고 그대로 독자에게 깊은 의미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구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주제는 크게 6장으로 나뉘어 있고 수많은 조언이 긴 목록에 펼쳐진다.
1장 삶의 의미를 들려주는 인생 수업
2장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인생 수업
3장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인생 수업
4장 명망을 얻고 유지하기 위한 인생 수업
5장 말 내공을 키워주는 인생 수업
6장 인간관계의 비밀을 들려주는 인생 수업
이 책을 읽다 보면 삶에 대한 그의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반발심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 시대와 맞지 않기도 하고 어떤 입장이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며 한 그룹에서는 맞지만 다른 사회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라시안은 이러한 논쟁 어린 반응을 오히려 기대했으려나:)
"한 번뿐인 인생은 즐거운 여행이어야 한다.
멋진 인생의 첫 여행은 죽은 자들과의 대화로 시작하라.
두 번째 여행은 산 사람들과 보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보고 깨달아라.
세 번째 여행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보내라. /29쪽"
가령 해설 없이 '죽은 자들과의 대화'를 읽었다면 잠시 헷갈릴 수도 있다. 죽은 자들이라... 제사를 말하는 건가. 그로테스크한 이 말이 무슨 의미지.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는 책, 독서를 통해 이전 세대의(고전 등) 지혜가 담긴 저자들과의 대화를 비유했음을 알 수 있다. 주장 아래에 간단한 설명을 읽으면 그 예상은 더욱 맞아떨어진다. '그럴 때 진실한 책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겠지만 그라시안의 말이 조금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고독을 선호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중시한 쇼펜하우어(1788~1860)와 비슷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7세기와 19세기의 격차가 있어도 취향이 비슷한 철학자 이미지가 풍겨서다.
"절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라"(241쪽)
이 조언에 대한 근거 부분을 보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자화자찬이거나 자학 둘 중 하나로 전자는 허영을 후자는 소심함을 보여준다고 했다.(241쪽) 물론 이 말이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함은 이해한다. 비교해 가며 과장을 섞어 남을 누르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드러내야 할 때도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자신감을 통해 자기애를 실현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야 어떤 장점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꿈을 꿀 수도 있으니까. 자학의 위험성은 어떤가. 자신에 대한 과장과 과신도 문제지만 자학도 마찬가지다. 극단의 자학은 아니더라도 때로는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반성하며 인생의 배움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삼는 것도 필요하다.
극단적인 경우라면 이런 사람에게는 약간의 허영과 자부심, 자신은 가치, 쓸모가 있다는 말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소인의 이해력을 위해 그라시안은 이런 주석을 덧붙이면 더 좋았을 텐데. 아무에게나 자기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으나 믿음이 굳건한 친구,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아도 된다고. 그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지나친 자만도, 지나친 자기혐오도 아닌, 결국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그라시안은 17세기 사람이지만 21세기에도 통할 만한 처세술을 냉철하게 표현하였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겨우 18세에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신부님이 되려면 군대, 대학원까지 마쳐야 하므로 최소 10년이 걸리고 평균 30세가 되어야 신부님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 당시의 수재라 할 만하다. 군종신부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고 국왕의 고문으로 일했으며 강의도 하였다. 하지만 저서 <비판자> 발표 이후 교단의 징계로 건강이 악화되어 1658년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사회와 인생에 대한 지혜를 지닌 만큼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서는 다소 냉정한 시선도 느껴진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신부님이 부모의 심정, 자식에 대한 마음과 애로사항은 다 알지 못하시지 않나. 그래서 침착함 속에 따뜻함이 있는 문구가 나오면 다른 조언보다 마음에 더 와닿았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하라"(227쪽)처럼.
제목만 보아도 삶의 처세술이 냉철하게 담겨있음을 알 수 있기도 함과 동시에 괜히 그 목록에 압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기에 내가 관심 있는 분야, 눈길이 가는 제목을 따라 펼치면 생각보다 글밥이 많지 않은 것에 안도할 수도 있다. 각 장의 소제목을 펼치면 여백이 있어 메모하기도 좋고 필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가의 말이라도 다 옳은 것은 아니니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배울 것은 배우는 독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