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는 올해도 잊지 않았다

by 애니마리아


신혼 때 한 번 밸런타인데이를 챙기지 못한 적이 있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서운해하던 남편(내가 아니다)이 귀여워 그다음부터는 웬만하면 작은 가나 초콜릿이라도 챙기곤 했다. 결혼한 사람은 알 것이다. 연애할 때는 그저 상대의 생일과 서로의 기념일만 챙겨도 많게 느껴지지만 결혼한 순간부터 양가의 어른 생신, 형제 생신, 제사(하든 안 하든 최소한 전화) 등 챙겨야 할 대소사가 많다. 원래 멀티가 잘 안 되고 적은 수의 친척과 지내다 보니 시댁 관련한 기념일을 챙기기에도 버거운 때도 있었다. 원래 해 오던 분이나 대가족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나의 이런 말조차 꾀병처럼 보이고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습득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결혼은 그야말로 화성과 금성의 진정한 조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남편은 여러모로 나와 반대였다. 공통점이 있어서도 좋았지만 집안 대소사, 가족, 친척을 챙기는 일은 정말 열정을 다해 해 나갔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친정 부모님을 챙기고 곰살맞은 언행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야. 경상도 남자가 이럴 리가 없어'하고 신기해하기도 했으니까.



나는 2월 14일, 올해의 밸런타인데이를 챙기지 못했다. 이때는 병원에서 퇴원한 시점이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소독 및 치료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먼 병원 길을 홀로 나가지 못해 늘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며 직장 동료들이 챙겨주었다고 초콜릿을 꺼내고 나서야 나는 그날이 밸런타인데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나의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 내가 경황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날은 아침부터 잠들기까지 내게 서운하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이 명랑 쾌활한 모습으로 나를 대한 기억이 있다. 속으로 어찌나 미안하던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너무 미안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화이트데이가 되었다. 그냥 길가 상점에서 사 주어도 나는 할 말이 없는데 며칠 전부터 특별히 봐 둔 초콜릿을 내게 내밀었다. 솔직히 내가 남편의 입장이라면 '나도 못 받았는데 왜 주나, 귀찮은데, 할 일도 많은데 올해는 그냥 넘어가지 뭐.' 하고 은근슬쩍 핑계를 댔을 것 같다.



크레파스처럼 알록달록한 색감에 가지런히 놓인 초콜릿을 보고 있으니 순간 먹는 게 너무 미안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는 나를 보고 남편은 말했다.


'꼭 먹어야 해. 살쪄도 되니까. 안 먹으면 그게 더 서운함!'



연초부터 겪은 사고의 여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통증이 많이 잦아들었다고 여겼는데 오히려 더 아픈 날도 있다. 이제는 보호대를 빼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다시 늪으로, 가라앉는 모래로 좀 더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래도 완전히 매몰되지 않는 것은 가족과 주변의 끊임없는 관심과 걱정, 따뜻한 마음 덕분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나는 최대한 사진을 찍고 기록하거나 좀 더 살을 붙여 글로 남기려 노력한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고 혹여나 내가 받은 사랑보다는 내가 겪은 고통이나 안 좋은 일만 기억할까 봐. 혹시라도 내가 노쇠하여 나도 모르게 내가 받은 사랑과 은총을 잊을까 봐. 그런 일이 본의 아니게 생기더라도 감사의 기억을 어딘가에 남기기 위해서. 이렇게라도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서.





900%EF%BC%BF20250314%EF%BC%BF061850.jpg?type=w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연기가 피어오르는 청송으로 떠난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