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돌잔치에 다녀왔다. 시댁 친척의 돌잔치. 남편과 결혼했을 때 조카는 귀여운 초등학생이었다. 큰 아주버님과 큰 형님의 첫째이자 시부모님의 첫 손녀이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남편도 유난히 첫 조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MBTI는 나와 같은 INJF라고 하는데 나와는 달리 사교성도 뛰어난 데다가 예의도 바르고 성실해서 사촌 동생들에게도 늘 모범이 되는 아이다. 보물 같은 조카가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우리는 모두 돌잔치에 초대받았다.
내 아이들도 모두 돌잔치를 했지만 벌써 이십 년이 넘었으니 요즘 돌잔치는 어떨지 궁금하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니 결혼 풍속이 변하듯 돌잔치 풍경도 많이 다를 듯했다. 조카의 말을 들어보니 해마다 저출산율을 경신하는데도 돌잔치 행사장을 예약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한 달도 아니고 거의 일 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 년 전이면 거의 아기를 낳자마자 혹은 태아일 때 미리 알아보고 장소를 정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선택사항이긴 하지만 일단 하기로 정했다면 계획하고 준비하고 비용 마련하는 등 신경 쓸 일이 정말 많아 보였다.
한 가지 의외인 부분은 최근에는 돌잔치에 손님을 많이 초대하지 않는 추세라고 했다. 이 또한 저출산과 관련되어 있는데 결혼을 안 하는 사람도 많고 한다고 해도 딩크족도 꽤 있어서 초대하는 사람도, 초대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심한 경우 나는 아이를 안 나을 건데 굳이 다른 아이 생일잔치에 가야 하냐며 손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환경과 조건의 변화로 그럴 테니 이해는 가면서도 다른 시대, 딴 세상을 접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돌잔치를 가지 못한 데다가 나도 정말 좋아하는 조카라서 꼭 가고 싶었으나 참석할 수 없었다. 일요일이었는데 하필 그날 반드시 가야 하는 출석 수업이 두 과목이나 있어서 온종일 수업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나만 제외하고 세 식구 모두 돌잔치에 가게 되었다. 첫째는 군인이지만 돌잔치 주인공이 자신의 첫 조카라며 휴가까지 내고 왔다. 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돌잔치가 있는 인천으로 나는 수업이 있는 서울로 향했다.
형제애가 유난히 돈독한 시댁은 아무리 멀리 살아도 일이 있으면 최대한 참석하고 함께 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곳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 또한 이런 문화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돌잔치 메인이벤트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더욱 미안하고 아쉬웠는데 다행히 뒤풀이가 있다고 했다. 남편은 그날 가장 바쁜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의 뒤풀이 참여를 위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이른 아침 서울까지 차로 나를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와서 둘째와 함께 인천으로 갔다가 내 수업이 끝날 때쯤 양복 차림 그대로 다시 서울로 와서 나를 픽업한 후 인천 아주버님 집으로 달렸다.
뒤풀이에 가니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돌잔치 덕분에 명절처럼 많은 식구가 모였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우선 조카의 아이가 태어났으니 진즉에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첫째와 둘째는 자연히 삼촌, 이모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사촌 누나, 언니가 결혼하고 애를 낳은 과정을 보고 겪은 아이들은 촌수를 따지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했다.
소소한 에피소드도 다시 소환되었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남편도 마침 군 복무 중이었는데 형의 아이이자 첫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휴가를 내어 달려왔다고 했다. 첫째는 자신도 대를 이어 아빠의 전통을 살리겠다며 휴가를 낸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기도 했다.
돌잔치 선물, 답례품도 화제였다. 우리 때는 그냥 떡이나 수건 같은 것을 돌렸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또 트렌드가 바뀌었다. 정성스럽게 포장한 양질의 국수를 사람 수대로 준비를 한 것이다. 이바지 음식을 쌀 때 사용하는 듯한 면포와 색동 끈을 보니 더욱 특별해 보였고 귀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머, 어쩜 이리도 정성일까'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으니까.
또 다른 이벤트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돌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 추첨(돌잡이 물건 맞추기)을 했는데, 첫째는 상품권을 받았고 둘째는 대형 고급 텀블러에 당첨됐다.
나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뒤풀이에 가니 큰 형님이 며칠 동안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따로 주셨다. 손재주가 많은 형님이 아크릴 수세미를 직접 떠서 주신 것이다. 일하시며 딸, 손주를 챙기는 것만도 힘드실 텐데 늘 이렇게 정을 주시는 형님께 감사하다. 형님도, 조카도 늘 첫째라는 책임감이 남다를 텐데 최선을 다해서 주변을 챙기시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많은 것을 배운다.
'핵개인'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친지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건 큰 축복 같다. 가족이어도 멀 수 있고 먼 친척이라도 가까울 수 있다는 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관계를 말해준다. 기쁜 일, 슬픈 일 가리지 않고 서로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다면 인생의 어떤 어려움, 갈등도 안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진심이 담긴 정, 그 하나만으로도 후대를 위한 의미 있는 선물이 되기를, 힘이 되는 인생의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