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마리아 Jan 29. 2024

에우튀프론

서평: 경건이란 무엇인가


제목: 에우튀프론


지은이: 플라톤/강성훈 옮김


발행: 2023년 3월 3일


출판사: 아카넷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5세기 때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이다. 그의 대화 기법, 문답법은 가장 소크라테스 철학의 근본적 특징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관련 저서는 실제로 그의 제자 플라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그리고 여기서 다룰 <에우튀프론>도 마찬가지이다. 



  에우튀프론이라는 저서를 처음 들어보았고 도대체 낯선 이 제목이 뭔지 알 수도 없어 지난 학기 관련 서적만 아니면 도저히 읽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에우튀프론'이라는 남자와 소크라테스의 만남,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름 자체는 실제로 '곧은', '직설적인', '직접적인'이란 의미를 지닌 euthys와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갖는 phronein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18쪽)




* 저서의 배경; 기원전 399년(드라마적 배경) 이때, 소크라테스의 나이 70세 때로 소크라테스가 당시 재판이 열리는 건물 앞에서 에우튀프론을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드라마적 설정이기에 실존한 인물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이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실존 여부가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실질적인 재판 과정을 겪기 전에 선행해서 다루어야만 했던 본질적인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플라톤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한다. 




* 주요 내용


  시작은 에우튀프론이 소크라테스의 공소 사건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피고의 입장인 소크라테스와 달리 원고의 입장인 에우튀프론의 문제가 언급된다. 사실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하러 왔다. 품꾼으로 잘 알고 있는 한 남자가 집안의 노예와 싸우다가 그 노예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가 난 에우튀프론의 아버지는 그 품꾼을 결박하고 추운 도랑에 방치해 두고 법정에 처리 과정을 문의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전령이 돌아오기도 전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품꾼마저 사망한다. 에우튀프론은 노예를 죽인 품꾼도 잘못이지만 그 품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사망하게 한 아버지는 결국 살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옳은 일을 한 것뿐인데, 아버지를 고소한 아들, 에우튀프론이 불경한 일을 저질렀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인 질문에 돌입한다. 



소크라테스: 제우스 신을 앞에 두고, 당신(에우튀프론)은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에 대해서 그토록 정확하게 아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신을 공경하는 것(경건)이며 무엇이 신에 대해 불손(불경) 한 것'인가? 



  이에 에우튀프론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한 일이 경건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의 답은 경건함에 대한 한 사례이지 경건 자체의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경건함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말해달라고 묻는다.



  에우튀프론은 대답한다.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은 경건한 것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불경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 전에 소크라테스는 신과 신의 정의로움 사이에서 문제점을 제기한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이 믿는 신은 제우스 신을 비롯해 헤라, 아폴론, 아프로디테, 크노소스, 헤파이토스 등 다신교적 성격을 띠는 존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똑같은 사건, 형상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의견이 대립되어 어떤 신에게는 참이지만 다른 신에게는 거짓, 불의가 될 수 있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어떤 말의 본질적 정의는 변하면 안 되는데, 신마다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제우스 신에게 경건한 것이 그 아버지 크로노스에게는 불경일 수 있는 것이다.(신화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자식들을 삼켜 먹었고 제우스 신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약을 먹여 형제들을 토하게 했다)



  하지만 이 논리에 당황하는 에우튀프론에게 핵심적인 질문이자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경건한 것은 그것이 경건한 것이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 생각


 이 질문은 언뜻 말장난 같지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질문과 답변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경건함과 신의 사랑은 병행할 수 없는 개념이면서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이끌어낸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질문이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 알고 보니 이 질문은 소위 '에우튀프론 질문'으로 회자되며 철학적 논쟁과 영감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몇 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너무 헷갈렸고 도표까지 그려보았지만 삼단논법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단, 소크라테스가 왜 이런 토론을 했는지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할 수 있었다. 당시 멜레토스가 주장한 소크라테스의 죄명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의 생각을 잘 못 이끌어 타락하게 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을 모독, 즉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이유였다.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풍기 문란 죄와 신에 대한 모독 죄라고 해야 하나? 



   혹은 이 질문의 형태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와 같은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불경죄를 선고받은 소크라테스, 과연 경건은 무엇인지 그 뿌리와 기준을 확실하게 세우고 싶었던 철학자의 열망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범인은 워낙 아는 것이 적기에 에우튀프론처럼 예시만 들 뿐이다. 곳곳에 드러나는 모순과 도돌이표 같은 인간의 논리를 통해 플라톤은 불변의 진리, 의미를 표현해 내지 못하는 상황, 인간의 한계를 나타낸 게 아닌가 한다.  









머리가 안 좋은 나는 주요 인물, 관계, 내용 등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 그나마 정리가 된다. 물론 늘 이렇게 독서하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소설처럼 읽기도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