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의 눈, 가능한 것일까

by 애니마리아


선천적인 시각 장애와 후천적 시각 장애를 겪는 사람의 풍경에 대한 이미지는 다를 것이다. 18개월에 열병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헬렌 켈러에게 색감이라는 게 남아 있었을까. 그렇게 시절이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싶다. 나도 5살(만 3세) 이전은 거의 기억이 없다. 그나마 기억나는 부분이래 보았자 빛바랜 스냅사진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으로, 순간의 장면으로, 강렬했던 느낌으로.




"미동 하나 없이 서 있는 나무들은 마치 새하얀 대리석 조각 같았다. 어디에서도 솔잎 향이 맡아지지 않았다. 햇살이 나무를 비추자 잔가지들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났고 손으로 살짝 건드리자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어찌나 눈부신지 내 눈을 덮은 어둠의 베일 정도는 뚫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105쪽/<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렌 켈러 중에서




헬렌 켈러가 쓴 자서전을 전체적으로 다루었지만 알찬 정보글이나 교과서를 읽듯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서가 아니라 쉬운 문체로 썼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은 내용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특이한 삶의 여정은 그 나름대로 특별했고 평범한 일상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평범한 시선으로 표현했기에 특별했다. 설사 희미한 빛처럼 사물과 색감과 같은 이미지를 각인했다 하더라도 정상인보다 더욱 세심한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싶은 구절이 너무나 많았다. 평생 시각 장애, 청각 장애로 산 사람이 '새하얀'이라는 미적 감각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다이아몬드의 빛과 햇살을 비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눈을 덮은 어둠을 뚫는 듯한 눈부심을 느낄 수가 있단 말인가.



역으로 생각하면 정상적인 감각을 타고난 일반인은 이 기적과 같은 일을 보고, 목격하고 듣는데도 감사하지도 감격하지도 않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에게는 사흘 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단 하루 만이라도 허락된다면 보고 싶은 아름다움일 텐데 말이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눈이 불편하고, 섬광 현상을 종종 겪는 나는 기회가 되면 주변에 시선을 보내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오늘의 당연함이 내일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축복일 수 있으니.



그녀가 가는 곳마다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고 깊은 사색과 본질을 오래, 진지하게 담으려는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헬렌의 옆을 따라가며 그 시절 그녀의 시선을 함께 느껴보려 한다. 나는 볼 수 있지만 그곳을 정확히 볼 수 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상상을 통해, 글을 통해 그녀가 들려주는 여행길을 느낄 수 있다.


"잊지 못할 추억 중 하나는 전교생이 날마다 센트럴파크를 산책한 거다. 뉴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 센트럴파크다. 넓디넓은 공원 어디 한 군데 즐겁지 않은 곳이 없다. 공원에 들어설 때마다 매번 듣는 거지만 늘 듣는 그 풍경 묘사가 나는 참 좋았다. 어느 곳을 보나 아름다웠고, 뉴욕에 머문 9개월 동안 단 하루도 똑같은 날 똑같은 풍경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날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149쪽




매일이 같은 듯하지만 사실 우리는 안다.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다는 것을. 매일이 다르고 매일 아름다우며 매일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당신도 매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아름다운 생각, 좋은 생각으로 살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볼 수 없었지만 보았던 헬렌 켈러의 긍정 마인드를 닮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녀에게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