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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사랑은

by 애니마리아

나에게 사랑은 소리로 된 언어이며 질문이었다. 글로 읽는 문자이기도 했다. 시각과 청각으로 이루어진 표현의 언어가 사랑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혹은 특정 대상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꾸 무언가를 주고 싶은 마음, 설레는 마음, 희생하고 싶은 마음, 자꾸 생각하게 하는 마음.


이게 무슨 말인가. 어느 날 어린 헬렌은 설리번 선생님에게 일찍 피어난 바이올렛을 따다가 드렸다. 설리번은 헬렌에게 입을 맞추며 헬렌을 사랑한다고 말했고 헬렌은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런 헬렌에게 설리번은 그저 헬렌의 심장을 가리키며 "그건 여기 있단다"라고 말했지만 헬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혼란스럽기만 할 뿐. (60~60쪽/<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가 살아온 이야기 중에서)


헬렌은 사랑의 의미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였다. 선생님께 꽃을 드리고 난 후에 들은 말이라서 그런지 '사랑은 꽃의 달콤함'(61쪽)인지 물었다. 아니었다. 그러면 따뜻한 햇볕은 어떠한가. 그보다 더 아름다운 따뜻함의 원천은 없다며 햇볕이야말로 사랑이 아니냐고 물었다. 역시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온종일 흐린 날에 소나기가 지나간 후 태양이 비치자 헬렌은 다시 물었다. 사랑이 이런 것이냐고. 긍정의 대답을 듣고도 헬렌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햇살이 비치기 전 끼어 있던 구름 같다'니!(62쪽)

"헬렌,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구름을 만질 수 없단다. 그러나 비를 만질 수는 있지. 한낮의 무더위에 시달려 목마른 대지와 꽃이 단비를 받아 마시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니? 사랑도 꼭 그렇단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모든 것 위에 부어지는 그 달콤한 만은 느낄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행복하지도 뭘 하고 싶지도 않을 거야."(63쪽/<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래서 때로는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나보다.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어떤 사랑의 모양을 발견할지 모르니. 달라진 공기 속에 태양의 따스함과 빛으로 사랑의 옷을 선사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


설리번에게 사랑은 구름이었다.

헬렌 켈러가 이것을 깨닫기 전에 사랑은 그저 아름다운 꽃의 향기와 비 온 뒤의 햇살 사이 그 어디쯤이었다. 설리번의 대답을 듣고는 그녀는 자신만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고백한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끈을 느꼈다고'.(63쪽/<사흘만 볼 수 있다면>)


사랑은 늘 아름다운 모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설레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며 행복하기도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서운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끈이 계속 남아있어 어느새 끌려 기기도 하고 다시 끌어보기도 한다.


사랑의 정의는 각자 다를지도 모른다. 그 나름의 인생 속에서 피어나고 경험으로 쌓일 테니. 말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말없이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지나쳐서 집착이 되기도 하고 너무 가벼워서 인스턴트 음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설리번의 사랑에 대한 핵심은 행복이고 무엇인가를 하게 하는 힘이다. 꽃 한 송이에도 행복함을 느꼈고 순간이지만, 또 꽃은 시들지만 사랑을 느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설리번은 헬렌을 위해 모정 이상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베풀었다.


모든 사랑이 사랑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열정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기도 하고 우정으로 끝나기도 하고 혐오로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베푸는 사랑에 내가 행복하고 의욕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오래가지 않나 싶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든, 인류의 다른 생명체,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이든.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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