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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어 원서

누구나 또는 그만의 상상으로

<THE THREE PIGS>

by 애니마리아


이번에 다룰 데이비드 위스너의 작품 4번째는 <The Three Pigs>(2001년)이다.



늑대가 나타났다. 짚으로 만든 집이 바로 코앞이다. 협박과 무자비한 공격으로 집을 다 날려버린 늑대는 첫 번째 돼지를 잡아먹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하다. 배가 부르기는커녕 허기가 진다. 허망하다. 두 번째 돼지의 나뭇가지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돼지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늑대의 배는 전보다 더 홀쭉해져 있다. 황당해하는 늑대를 두고 돼지 형제들은 저편에서 낄낄거리며 잘만 살아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돼지들은 도망간 것인가. 늑대에게 잡아 먹힌 게 맞기는 한가. 늑대의 착각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마법의 장난인가.



흔한 줄거리에 익숙한 독자일수록 혼란은 가중된다. 이 황당함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애당초 이 동화는 사실이 아닌데 원래 허구와 전혀 다른 전개가 더 허구적이라고 선을 그을 수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삼 형제'(THREE LITTLE PIGS)가 아니다.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원제 <THE THREE PIGS>의 모험 이야기이다.(번역서: 아기돼지 세 마리> 전통에서 나왔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전개되는 작품으로 이른바 독특한 RETELLING STORY(이야기의 재구성) 같지만 100% 적확한 표현은 아닌 듯하다.



아기 돼지 삼 형제와 늑대의 악연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뭔가 다시 반복되지만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공통의 요소가 어느 시점에서 무너지며 새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책 속에서 나온 돼지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페이지를 이용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어디론가 날아간다. 비행 중간에 만난 캐릭터들은 또 다른 동화의 주인공들이다. 서양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지엽적인 캐릭터들이 각자의 이야기에서 나와 이들과 만난다.



고양이와 바이올린

보름달을 넘는 젖소

사랑에 빠져 도피 행각을 벌이는 접시와 수저

보물을 지키는 용, 그들을 뒤쫓는 기사


이들이 서양인에게 익숙한 동요와 함께 등장한다.



"Hey

diddle diddle,

The cat and the fiddle

The cow jumped

over the moon."


본문 중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라임(rhyming)과 가사가 추억을 일으키는 장치가 될 것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심청이, 호랑이와 곶감,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말하면 자연스럽게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엄마가 섬 그늘에'라는 문구를 들으면 바로 서정적인 자장가 '섬집 아기'를 떠올리는 감성이 일어나는 것처럼.



공통과 공감의 이미지가 있는 반면 데이비드 위스너의 개성이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바로 상식을 파괴하고 나온 상상, 그만의 상상이다. 가령 용의 이미지 활용이다. 용은 서양이든 동양이든 강하고 신비한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용은 강자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약자라고 알고 있는 돼지들이 난관에 빠진 용을 구하고 용은 돼지 삼 형제에게 최대한의 예우가 섞인 찬사를 보낸다.



"Many thanks for rescuing me, O brave and noble swine."

본문 중에서







그만의 상상을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동화집에 묶인 캐릭터들이 바로 종이 지면을 통해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간다. 어릴 적 한 번쯤 해보았을 듯한 상상을 작품으로 다시 구현하였다. 이렇다 할 인과 관계없이 이야기와 언어의 조합이나 해체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과 전통적 이야기를 마치 모자이크처럼 섞어 놓는다.



독특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이는 그의 작품을 미리 접했다는 것을 전제로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넘기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응?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며 멈추게 되는 지점이 있다. <Sector 7>, <Free falling>, < Tuesday>의 한 장면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는 듯한 장을 발견한다면 어떤 독자는 그만의 시그니처, 그만의 서명, 그만의 퍼즐에 놀라워하지 않을까 싶다.



실험을 멈추지 않는 데이비드 위스너는 결론도 특이하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서사는 물론 그가 즐기는 열린 결말조차 없다. 그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개인 미술관 전시를 돌아본 기분이다. 독자에 따라 너무 다양한 스타일 때문에 혼란을 느끼기도 할 것이고 반대로 흥미롭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느 쪽에 치우칠지에 대한 비율은 각자의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크게 벌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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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Pigs저자데이비드 위스너출판 Clarion books발매 200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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