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TSAM>
다섯 번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데이비드 위스너에게 세 번째 칼데콧 메달을 선사한 작품 <FLOTSAM>(번역서:시간 상자 2006년)이다. 세월이 흘러서일까. TUESDAY의 기괴한 분위기와 THE THREE PIGS의 하이브리드적인 작품에 비해 FLOTSAM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 서사가 가장 자연스럽다. 앞의 두 작품은 글밥이 거의 없지만 만화의 풍선 글이나 표어 같은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단 한 문장, 하나의 어휘도 없이 자연스러운 서사를 들려준다. 나처럼 초현실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예술 문외한도 이해하고 추측할 수 있는 단서들이 가득하다.
원서의 제목인 FLOTSAM은 무척 낯선 단어였다. 뜻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아마 책의 주인공 이름이거나 고유명사화된 보통명사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어느 것도 아니었다. flosam은' 해변에 밀려온 표류물이나 잡동사니'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런데 번역서 제목은 이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말이었다. '시간 상자'. 시간 여행도 아니고 시간 상자? 강렬한 붉은색에 눈인지 렌즈인지 모를 원 안에 물고기와 네모난 무언가가 비친다. 이게 뭘까. 한 사물 혹은 동물의 일부만 드러나는 그림의 전체가 궁금하기만 하다.
한 소년이 바닷가에서 소라게를 들여다보며 놀고 있다. 문득 물속에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아 파고로 향하지만 이내 큰 파도에 휩쓸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년 앞에는 해조류와 따개비로 둘러싸인 구식 카메라가 떠내려 와 있다. 그것도 아주, 아주 오래된 사진기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날 즈음에나 볼 법한 상자로 레트로 감성이 가득하다.
특이한 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진기 표면에 마치 이름처럼 Melville 이란 이름과 함께 '수중 카메라'(underwater camera)가 덧붙여 있다. 바로 연상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은가. 바로 <모비딕 Moby Dick 1851년>의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이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이 작품이 향하는 방향과 모티프를 짐작할 수 있다. 바다, 모험, 신비의 세계, 그리고 그 세상 속의 인간.
한 컷, 한 컷 만화의 장면을 보여주듯 그림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자면 작품 속 사진기 안에 있던 초창기 필름을 보는 듯하다. 어렵게 현상한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소년은 자신이 보고 있는 장면이 믿기지 않는지 눈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그가 본 사진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중 한 장은 이 책의 표지의 전체를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독자는 또다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 거짓 같지만 왠지 정말 있을 것 같은 세상을 보여준다. 어처구니가 없는 황당함은 없다. 나도 그런 여행을 같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을 뿐. 그림 속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와 말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 놀라운 사진들은 이 작품의 배경일뿐이다. 정작 주인공은 따로 있다. 마지막 한 장을 들여다보다 소년은 사진 속비밀을 파헤치고 또 파헤치다 현미경까지 동원하여 근원을 추적하는데......
반복, 윤회가 떠오르기도 하고 사진의 의미를 발견한 수많은 소년, 소녀의 역사를 찾아가는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을 알게 된 소년은 자신도 그 일부가 되는 방법을 알아낸다. 말 한마디 없이 소년과 여정을 함께 하면서 발견한 독자로서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과 행복으로 응원하게 된다. 소년이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다시 사진기를 바다를 향해 던질 때 그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슬픔도 원망도 의문도 없다. 단지 시간을 담아 어딘가에 누군가가 다시 그 비밀을 발견하길 바랄 뿐. 데이비드 위스너의 책 중에 가장 편안하게 읽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책, 그의 상상이 현실이 되길 소망하게 되는 책, FLOTSAM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