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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 인생에 대한 태도

<승부>

by 애니마리아


제목: <승부> The Match, 2025

장르: 드라마, 스포츠, 시대극

감독 김형주

각본 김형주, 윤종빈

제작사 영화사월광

상영 시간 115분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것 중에 놀라운 점을 하나 소개한다. 본 영화의 촬영 시점이 거의 5년 전이라는 사실이다. 2020년 첫 촬영에 2021년 초에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마케팅 전략과 영화의 완성도 등 여러 가지 연유로 개봉이 생각보다 늦어질 수는 있긴 하나 좀 더 빨리 보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 <승부>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조훈현, 이창호라는 바둑 프로 기사의 이야기로 1990년대 전후 두 사람의 인연과 대국, 역전, 재역전 및 승부의 세계, 좌절과 철학, 심리가 다루어졌다. 개인적으로 바둑의 ‘ㅂ’자도 몰라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까 우려되었다. 하지만 방송 캐스터가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내레이터 역할을 맛깔나게 해 주었기에 영화의 흐름을 읽기에 큰 무리가 없었다.



이병헌, 유아인 배우의 명연기 호흡도 조화로웠다. 이병헌의 연기는 ‘구관이 명관이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고 유아인의 연기도 그 못지않게 노련하고 진지했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이 얼마나 실존 인물을 분석하고 연구하며 노력했을까. 분장도 좋았고 몇 수, 몇 십 수를 내다보며 머리를 굴리는 모습과 촬영기법도 세련미가 풍부했다. 두 사람을 통해 나타난 바둑 기사들의 싱크로율이 꽤 높아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조훈현 역할을 맡은 이병헌 배우의 다리 떠는 모습이 ‘욱’하며 성질내는 제스처, 얄밉게 노래를 부르며 상대를 교란시키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살기가 도는 듯한 무표정의 이창호 역할을 소화한 유아인 배우의 눈빛과 차분한 모습도 압권이다.



아역으로 나온 김강훈의 당차고 승부욕 강한 모습, 대사처리도 눈길을 끌었다. 이창호의 아역과 성인 때의 모습은 너무나 차이가 커서 같은 사람이 맞을까도 싶었지만 사춘기 때 성격이 확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납득이 전혀 가지 않은 건 아니다. 친구이자 바둑 관계자 역을 한 고창석 배우나 아내 역할을 한 문정희라는 배우의 어조, 태도도 보기 좋았다.



영화에서는 또 다른 바둑의 고수 ‘남기철’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영화가 시작되고 프롤로그와 같은 문구에 따르면 조훈현, 이창호 외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강력한 라이벌 상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자 역할을 한 조우진의 남기철 연기도 여운을 남길 만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의 연기를 통해 인생의 새옹지마를 연상할 수 있었고 대인의 철학을 접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는 영화일 때 대개 스토리보다는 배우의 연기에 더욱 집중해서 보게 된다. 사실 이름과 세기의 대결이라는 기사 타이틀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는 포인트에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실제 사건과 허구의 이야기가 적절히 버무려졌겠지만 감안할 때 사실일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낄 만큼 가슴을 울리는 대사와 장면이 있었다. 일일이 다 열거해서 스포일러에 일조하고 싶지는 않다. 단, 두 사람의 갈등과 기구한 운명의 장난 같은 순간에 치사하고 유치한 모습도, 또 고통을 승화시켜 군자다운 태도도 진정성 있게 목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승부의 냉혹한 세계에서 한 인간이 꼭대기에서 바닥을 오르내리는 모습에서 인생의 본질을 체험할 수 있었다. 자세히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어떻게 쓰러지고 좌절하고 승리하고 패배하다가 다시 일어서는지, 어떻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관람객도 있을 것이다.



바둑의 수나 집, 그 어떤 규칙도 모르지만 그들의 끝나지 않는 대결과 승패 속에서 나눈 글자의 장면을 또 하나의 명장면으로, 혹은 명대사로 꼽고 싶다. 말없이 나눈 두 사람의 각오, 스스로에게 혹은 상대에게 건네는 출사표, 세상에 드러내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 등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기에.



조훈현: 무심(無心)

이창호: 성의(盛意)



오랜 세월 널리 알려진 단어지만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은 쉽지 않다. 이 단순한 진리 속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겸손하며 갈고닦음을 게을리하지 않은 두 프로기사, 두 배우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인생에 대한 큰 스승들을 만나며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영화팬들에게 추천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바둑알을 오목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한 사람이다.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고 할 줄 안다면 이 영화의 감동과 재미는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문외한도 울고 웃다가 배울 수 있는 색다른 스포츠+감동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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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감독김형주출연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개봉 2025.03.26./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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