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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빈자(貧者)가 되어

by 애니마리아


2025년 4월 21일, 부활절 다음 날, 그분은 아픈 몸을 이끌고 나와 사람들을 축복하신 후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이 그러셨듯, '내 뜻이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를 되뇌셨을까. 정작 공식적으로 남긴 육성은 부활절 사람들에게 선사한 진심 어린 축복이었다. 스스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셨고 종교가 달라도 평화를 빌며, 서슴지 않고 무릎을 꿇어 빈자에게 입맞춤을 하셨던 분,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Jorge Mario Bergoglio, 아르헨티나 최초의 교황, 예수회 출신으로 최초의 교황)이시다.



교황님의 선종 소식과 함께 새로운 교황님을 맞이하고 싶은 열망도 간간이 감지된다. 다음 달로 예정되어 있는 '콘클라베'가 심심찮게 들리며 각국 출신의 추기경님들의 후보 리스트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교황님의 선종을 애도하고 싶다. 단순히 인자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한 성실한 가톨릭의 일꾼, 그 이상의 모범이셨기 때문이다. 장례식에 갈 수는 없지만 작은 기도 가운데 문득 떠오르는 그분의 고통과 인내, 사랑을 기억하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짧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세월호 희생자의 가족을 위해 기꺼이 걸음을 멈추시고 귀를 기울이셨던 분, 정치색을 걱정하며 노란 리본을 떼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소신을 밝히시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를 건네셨던 분, 그 용기와 힘은 어디서 왔을까. 신이 될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인간의 낮은 상태로 오신 예수님의 뒤를 그대로 따르는 분 같았다.



가난한 자를 위해 살고자 애썼고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 평생 실천을 하셨던 분,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이 '가난 서약'을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3년 교황 즉위부터 선종 때까지 추기경으로서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셨고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셨다. 가난한 자, 약자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 빈자(貧者)가 되셨다. 실제 남긴 재산이 100달러(약 14만 원) 뿐이었다고 한다. 교황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전용 거처를 마다하고 일반 사제가 쓰는 기숙사를 사용하고 화려한 보석 십자가를 매는 대신 오래된 철제 십자가를 들었으며 늘 신던 검은 구두만 신으셨다. (JTBC 뉴스 외 )



올 초부터 양쪽 폐렴의 심각한 증세로 최소 2개월 이상 휴식하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재소자 방문, 미사 참례 등 공식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셨다. 선종 하루 전, 부활절에는 미국의 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을 하셨고 부활절 미사 전후에는 대독 연설을 통해 전 세계 분쟁지역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마음 아파하셨다.



가난한 자의 아버지로 불린 교황님은 당신을 성 베드로 성당 내가 아니라 성당 밖 지하 무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4월 23일 ~26일 조문, 장례식) 이름만 써 달라는 검소한 교황님.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토록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신지 신기할 뿐이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면 나도 모르게 편한 것을 찾는 게 인간의 본성일 텐데, 신체의 고통과 힘든 순간에도 평화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신 분의 위대함을 느낀다.



세례명의 기원이 된 '성 프란치스코'(1181~1226)는 이탈리아의 아시시 출신의 성인이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복음적으로 살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평화와 사랑, 형제애, 가난의 삶을 실천했으며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회)'를 창설하였다.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그분이 받은 세례명의 의미대로 살아가신 분이었다. 그분의 털끝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될 만큼 용감하지도 선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회가 주어질 때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유로, 교황님의 평온을 비는 동시에 평화의 기도를 함께 드리고자 한다.






"주여, 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평화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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