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단상, 소로 4th

by 애니마리아


소로가 말하는 의도적인 삶은 어렵다. 각자가 고유의 별처럼 빛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수많은 글은 그의 실천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가 말하는 의식과 의도적인 삶에 왜 그토록 열중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Time is but the stream I go a -fishing in. I drink at it; but while I drink I see the sandy bottom and detect how shallow it is. Its thin current slides away, but eternity remains.

시간은 단지 내가 낚시를 하는 시냇물이다. 나는 그 시냇물을 마신다. 하지만 물을 마시는 동안 모래가 있는 바닥이 보이니 시냇물이 얼마나 얕은지 알 수 있다. 야트막한 물살이 흘러내려 가지만 영원은 남아있다.


I would drink deeper;fish in the sky, whose bottom is pebbly with stars. I cannot count one. I know not the first letter of the alphabet.

나는 더 깊은 곳을 마신다. 하늘에서 낚시를 한다. 그곳의 바닥은 별처럼 조약돌로 채워져 있다. 하나도 셀 수가 없다. 나는 알파벳의 첫 글자조차도 알지 못한다.



I have always been regretting that I was not as wise as the day I was born.

나는 내가 태어난 날 만큼 지혜롭지 못한 게 늘 아쉬웠다."

p110/영미 산문




시간이 얕은 시냇물에 비유되어 마실수록 점점 얇아지는 상황은 이해하겠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영원히 남는다'너 무슨 말인가. 태어나서 죽기까지 시간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존재했지만 시간 자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하다는 뜻일까. 세월이 가더라도 삶의 본질, 생명의 본성은 영원히 남아있다는 뜻일까.



두 번째 단락은 좀 더 수월하다. 모래가 깔린 바닥의 조약돌까지 보이는 물은 얼마나 맑을까. 깊지는 않지만 물고기도 살고 있다. 순수한 물의 흐름 가운데 맑은 하늘도 비출 정도로 깨끗한 물일 테다. 마치 하늘에서 낚시를 하는 기분이겠지.



마지막 단락에서 태어난 날 만큼 지혜롭지 못하다는 말은 정말 수수께끼 같다. 지식으로 보면 가장 무지의 상태일 테고, 순수함을 기준으로 하면 가장 순수의 빛이 발하는 순간일 것이다. 살아갈수록 지혜가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준다는 뉘앙스는 그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에 내가 너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소로처럼 무작정 길을 떠나 자연 속에 사는 삶은 녹록지 않지만 가끔은 하늘을 보고 나무와 꽃을 쳐다보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인간은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 싶으면서도 현재의 삶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만의 시간 안에 갇혀 휘둘리는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그만의 '카르페 디엠은 하루의 시간을 즐기되 자신이 생각하는 할 일에 집중하기다. 그러니 얕은 시냇물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살아있는 한, 할 수 있는 한 당장 내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것일 테지.



그의 당부는 비유와 의식으로 가득 차 어렵지만 다정하다. 무엇을 하라라는 그라시안의 말투처럼 명령이 아니어서 거부감은 덜 하지만 한참 생각하게 된다. 분명 함께하자고 말하는 듯한데 내성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짧고 강렬하게 초를 다투는 100미터 달리기의 삶보다는 느리더라도 함께 마라톤을 즐겨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월든> 하나만으로도 그는 엄청난 명성을 얻었지만 생전에는 그리 풍족하게 살지 못했다고 한다.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워낙 검소한 삶을 살면서도 당대 사회문제에 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사상가, 행동가였다고 하니까. 세금 납부 거부도 그중 하나인데 이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실험한 것도 자원 등을 바라거나 뭔가 극복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연 존재 자체를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건강이 좋지 못해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난 소로,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자연을 관찰한 그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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