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예방을 위해 주사를 맞았다. 2차 접종이다. 1차 접종 때 최소한 이삼일은 팔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아팠지만 2차 때도 비슷하다는 조언을 듣고 미리 진통제 처방도 추가로 받아 두었다. 접종 당일은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이내 정형외과에서 재활치료 일정도 있어서 걱정을 했지만 팔에서 느껴지는 아리 한 통증은 참을 만했다. 아무래도 진통제를 하나 더 먹어야겠다.
어둠이 완전히 깔리고 밤 9시가 넘으니 서서히 피로감과 근육통이 올라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무리하지 말자는 기분으로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추어 그냥 누워버렸다. 보이지 않는 끈이 나를 침대와 함께 묶어버리는 기분이었다.
문득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오른팔은 골절과 수술 후의 염증 반응이 남아 아프나 강도는 꽤 줄은 편이다. 단 수시로 찾아오는 통각이 내 삶을 삐거덕거리게 할 뿐이다. 하루 자고 난 시각, 이번에는 오히려 주사를 맞은 왼쪽 팔 위쪽에 더 심한 통증을 느꼈다. 머리에 손을 대니 열이 있다. 전신 근육통에 무력감이 더해지니 마치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을 처음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아, 약이 세긴 센가 보다. 사백신인데. 그래서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에 나누어 맞아야 하나?' 심한 경우(고열과 호흡곤란 등의 아나필락시스 반응)가 아니라 그나마 감사해야 한다며 스스로 다독였다.
내가 맞은 싱그릭스(Shingrix)는 대상포진(herpes zoster) 예방 백신이다. 작년 말에 맞고 2개월 후에 2차를 맞아야 했지만 오른팔 골절 사고로 수술과 보호대 생활을 해야 해서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원래 갑상샘 저하증 약이 다 되어 간 내과지만 싱그릭스 2차 접종이 더 시급하다고 했다.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고가의 백신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서 부랴부랴 혈액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은 것이다.
대상포진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쉽게 걸릴 수 있는 질병이기에 십 대, 이십 대에서도 심심찮게 나타난다고 한다. 사실 싱그릭스 외에 가격도 훨씬 저렴하고 1차만 맞아도 되는 백신이 있다고 했다. 사전 조치이니 보험처리도 전혀 안 되어 이 또한 비용 면에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백신은 효과도 낮고(50~60퍼센트 수준,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효과가 떨어짐) 면역력이 원래 약한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는 정보도 있었다. 이런저런 감염에 취약한 나의 병력을 돌아보니 부담스러웠지만 결국 싱그릭스(90% 이상 효과, 최근 사용 추세라고 함)를 택했다.
사실 나는 대상포진을 몇 년 전에 한 번 앓은 적이 있다. 심장 혹은 위(아직도 정확한 위치를 구분하지 못한다) 속까지 찌르는 듯한 통증에 비교적 일찍 가서 치료를 했지만 그때 발생한 강렬한 통증과 붉은 물집과 같은 띠의 형상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 걸렸으니 항체가 생겨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대상포진은 완전한 면역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한다.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질 때 다시 활성화되는 시스템이라며. 나는 이 모두에 해당한다. 고령자, 스트레스, 면역억제 상태. 여기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도 많으니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통각이 다른 통각과 만나고 겹쳐지고 헤어지다 다시 누르는 과정이 반복된다. 예전의 나라면 '끝까지 해보자'라며 병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싸움을 하거나 무모하게 이 악물로 내 할 일, 공부를 했을 것이다. 포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각이 찾아오면 우선 멈추고 수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눈치를 본다. 내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 우선 이야기를 들어보고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이게 최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삶 속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통각과 공존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