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 『 PIGGYBOOK 』
* Author: ANTHONY BROWNE
* PRINTED IN: 1986
* Publisher:DRAGONFLY BOOKS
"Mr. Piggott lived with his two sons, Simon and Patrick, in a nice house with a nice garden, and a nice car in the nice garage. Inside the house was his wife.
피곳 씨는 멋진 정원, 멋진 차고에 멋진 차가 딸린 멋진 집에서 두 아들, 사이먼과 패트릭과 살았어요. 집안에는 아내가 있었고요."
본문 중에서/『 PIGGYBOOK 』
작품의 첫 문구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옛날 옛적에'처럼 그저 평범한가. 동화지만 너무 식상한가. 이 정도면 무난한 인트로인가. 내용은 어떠한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가. 다복하고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에 불과한가. 조금 더 자세히 보라. 뭔가 불균형이 느껴지지 않는가. 시소의 기울기가 한쪽으로 너무 쏠려있는 것처럼. 집도 멋지고 정원도 멋지고 차도 멋지다. 심지어 차가 머물고 있는 차고도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아내는 왜 이름조차 없는가. 그녀만 왜 집안에 있는가.
물론 표지를 보면 무게 중심이 확실히 엄마에게 쏠린 것을 알 수 있다. 엄마 등 뒤에 꽤 커 보이는 체격의 아빠와 건강해 보이는 두 아이가 업혀있다. 표정은 대체로 나쁘지 않다. 엄마는 조금 안쓰럽지만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귀여운 포즈는 보기 좋다. 새하얀 치아까지 드러내며 미소를 보이며 앞을 응시하는 아빠는 조금 얄밉지만 너무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왜 가족을 다 업고 있는가. 홀로 일하는가. 무엇보다 왜 혼자 웃지 않는가. 다른 가족처럼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가. 아니, 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인가. 바라볼 수 없는 것인가. 슬픈 것인가. 화가 난 것인가. 아무도 그녀의 기분을 모르는가. 아무도...?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영국의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1946년 9월 11일생으로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 영국 계관 아동문학가, 한스 크리스티안 상을 받았다. <겁쟁이 윌리>1984년, <미술관에 간 윌리>1999년, <우리 아빠가 최고야> 2000년, <우리 엄마>2005년 등 여러 작품이 있다. 아이들의 정서와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좋을 만큼 깊이 있고 상징적인 이야기와 그림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작품은 가족관계 속에서의 현실과 부당함 등을 중심으로 한 심리와 상징성을 다루었다. 초현실주의적 그림처럼 동물의 형상을 곳곳에 심어 놓고 마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디테일로 읽기의 재미를 더한다.
특정 단어나 표현의 반복을 통해 운율만 살린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대상(아빠와 두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상대(여기서는 엄마)의 대립적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확실하고 자신만만한 피곳 씨 및 아이들의 표정과는 달리 엄마의 얼굴은 작은 눈마저 힘없이 늘어진 머리카락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뒷모습만 보이거나 아예 안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는 이들 가족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아침의 분주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펼쳐보며 아침밥을 달라고 다그치는 남편, 그가 읽고 있는 신문에서조차 사람, 동물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잔뜩 벌리고 큰소리로 뭔가를 요구하고 있다. 마치 '해 줘, 빨리!'라고 외치는 것 같다. 배고프다며 빨리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은 두 아들도 마찬가지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르는 말은 오로지 "Hurry up with the breakfast, Mom"이다. 왜냐하면 아빠는 빨리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가야 하고 아이들은 '아주 중요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서도 엄마는 쉴 수 없다. 설거지를 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를 한 후 그녀도 일을 하러 가야 한다.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다가 돌연 엄마가 사라진다. '너희들은 다 돼지야!'라는 메모만 남긴 채.
브라운 작가는 이야기가 평범함에서 점점 위기로 치닫는 동안 돼지의 모습을 곳곳에 숨겨 놓고 숫자를 늘려 어느 순간 독자가 변화를 알아챌 정도가 되게 만든다. '설마 여기까지, 그것까지 돼지로 만들까'라고 싶을 정도로 작은 소품에서 배경, 심지어 가족의 옷차림마저 돼지의 눈, 코, 얼굴이 되어 내용은 점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말이 씨가 되듯, 안하무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가족들의 언어를 보아도 동물에게 쓸 법한 단어들이 나온다. 번역본에서는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를 차이가 원어에는 확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가령 우리말로 '훌쩍이다'는 말은 사람, 동물 큰 구분이 느껴지지 않지만 원서에는 사람에게 주로 쓰는 sniffle가 아니라 snuffle이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연결시켜 외모와 내면, 언어마저 점점 무심한 동물처럼 변질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엄마의 자포자기한 심정과 행동을 깨운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밥 빨리 달라고요, 늙은 아줌마!"
원어는 "Hurry up with the meal, old girl"이지만 마지막 old girl의 번역이 책에 어떤 식으로 번역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감사와 도움은커녕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사랑과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아이들의 이 한 마디는 독자로서 분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스타일과 문맥에 따라 '노파, 노인'이 될 수도 있고 '늙은 소녀'처럼 직역을 할 수도 있다.
누가 봐도 엄마에게 편중된 집안 일과 존경, 배려 없는 분위기는 서양의 한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임에도 아시아의 전통적 가정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다. 엄마의 폭탄선언대로 아빠와 아이들의 희화화된 모습과 변화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인간의 모순된 감정과 변하지 않는 성정을 꼬집는 아이러니도 느껴진다. 마치 허영과 이기심을 비평했던 모파상의 작품처럼 어린이 버전의 리얼리즘 동화를 본 것 같았다.
이야기 중간에, 혹은 읽은 후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생각할 거리는 많다. 존재의 소중함을 주제로 '왜 우리는 늘 누군가가 부재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가'를 묻고 대답해 볼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의 조건을 논할 수도 있고 각자의 목소리를 낼 때 편향되지 않고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고 배울 수도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동물의 경우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여기에서는 엄마가 집안의 외로운 구성원으로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그 대상이 다양할 수 있다. 아빠가 될 수도 있고 자녀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손가락 모두를 소중히 다루듯 가족 모두를 존중하고 함께 나누지 못하는 가정은 어떻게 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글과 그림의 어울림 속에 알아두면 좋을 어휘도 몇 개 정리해 본다.
drudge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
unappreciative 진가를 모르는, 감사하지 않는
fend for~을 스스로 하다, 자립하다
swinish 돼지 같은, 더러운
chauvinist 광신적 애국주의자
기발한 작가의 문학 장치와 아이디어 찾기를 좋아하고 웃음과 생각할 거리, 예술적 포인트, 변화의 단서 등을 즐기는 독자라면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PIGGYBOOK>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