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카 오사무는 이렇게 아팠다

by 애니마리아


부제: 깊게 읽고 배우기-데즈카 오사무( 治虫 手塚)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아팠다>(이찬휘 허두영, 강지희/2023, 들녘)을 읽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아니다. '아팠다'라는 한 어절 차이가 편집자 혹은 작가의 재치를 반영했고 그대로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저런 잔병과 지병이 있는 나는 위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아팠던 사람들,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불편함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구하면 찾으리라'는 말처럼 지혜로운 선조들을 연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투스트라의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목차에 나온 리스트만 보아도 얼추 백여 명은 되는 것 같다. 초반에 나오는 한 일본인의 이름이 눈에 익었다.



'데즈카 오사무'



굵은 안경테를 끼고 뭔가에 집중하는 듯한 모습의 흑백 사진과 '블랙잭처럼 의술을 베풀고 싶었던 데즈카 오사무'라는 소제목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초반 몇 단락을 읽다 보니 '만화'라는 단어에서 멈추게 된다. 가만, 어디서 보았더라. '혹시 그분인가' 하는 마음에 얼마 전 읽었던 <실패도감>을 다시 살펴보았다.



어릴 적 방과 후 집에 와서 늘 즐겨보았던 만화영화 '아톰'의 작가였다. 일본 만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이름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아, 이런 작품이 한국에서도 어서 나왔으면' 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실패도감>에서는 그의 어마어마한 유명세와 더불어 치명적인 실패 요인이 나온다. '만화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업적이 대단하지만 '남을 비난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만화를 보면 질투심에 빈정거리거나 자신의 만화 안에서 흉을 본다거나 하는 행위가 있었나 보다. 게다가 일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관리 소홀인지 모르겠으나 종종 마감시간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명성에 비해 주변의 일하는 사람들은 많이 괴로웠을 듯싶다.



반면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아팠다>에서는 신체적 질병에 좀 더 키워드를 맞추어 서술하되 어린 시절과 업적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놀라운 부분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세계적인 만화가, 장인을 보면 대개 어릴 적부터 만화에 미친 경우가 많기에 그 외의 생활은 등한시했을 거라는 편견이 형성되기도 한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는 왜소하고 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공부도 잘했던 모양이다. 1945년 오사카 의대에 입학하고 1952년에 의사시험에 합격했지만 그는 의사의 길을 가지 않았다. 첫 만화 발표가 17세였다고 하니 한동안 의대 공부와 만화 작업을 병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넷플릭스 작품 '중증외상센터'의 이낙준 작가가 떠올랐다. 의사 출신이기에 내용이 더욱 사실적이고 풍부한 스토리를 감상할 수 있었기에.



더욱 놀랍게도 의사가 아닌 만화가의 길을 가라고 권한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가 상상력을 발휘하며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특한 부모님의 성향과 지지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카메라와 영사기에 빠졌고 어머니는 찰리 채플린 연기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겼다고 한다. 친구 중에는 시계 가게 아들이 있었는데 함께 기계, 곤충, 우주에 빠져들었고 이는 필명으로 벌레충(蟲) 자를 넣은 '오사무(治虫)'를 쓸 정도였으니까.



성격적인 논란과 일하는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대단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88년 경화성 위함 4기로 심각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고 위의 4/3을 잘라내면서도 병원에서 남겨야 했다.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힘도 없는 상태에서 늘 간호사에게 연필과 종이를 부탁하며 그린 작품 '네오 파우스트'는 그의 유작이 되었다. 향년 60세로 1989년의 일이다.



악성 종양이 점막을 뚫고 자라는 질환인 위암.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하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간 그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능과 명성을 얻으며 행복한 순간도 많았겠지만 그도 인간으로서의 비난과 스트레스, 질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픔을 핑계 삼아 포기하지 않은 정신만큼은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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