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엄마의 정체성이야

감사를 지향하다

by 애니마리아


아들이 군대 간 지가 엊그제 같은데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올여름 그는 다시 자유인이 될 예정이지만 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아들은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이상하게도 아이가 휴가 나오는 날은 괜히 마음이 설렌다. 남편을 볼 때의 설렘과는 또 다른 설렘이다.



군대에 가서 가장 힘든 것은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 의지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복지와 음식, 환경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그러니 단 며칠이라도 허락된 자유를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그런 마음을 알기에 아이가 휴가를 나올 때면 늘 그날 오후 친구를 만나러 가도 이해를 하려고 한다. 인간이어서 그런가. 어미 새들은 새끼들이 이소를 하면 어찌 그리 미련 없이 떠나보내는지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루틴이 있다. 아이는 오전에 집에 도착한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가끔 간식을 먹으면서 모자간의 수다를 떤다. 아이는 몇 시간 후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하지만 그전에 꼭 나와 점심을 먹고 가려고 한다. 한창때라 햄버거나 라면 등 먹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도 항상 내게 먼저 물어본다. 소화력이 떨어지고 변비에 시달리는 사실을 아는 아이는 어느새 엄마를 배려하는 아빠를 닮아간다. 몸도, 마음도 커버린 아이를 느낄 때면 늙음에서 오는 서글픔이 꽤 사라진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아이가 문득 건네는 제안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엄마, 나 가기 전에 우리 사진 한 장 찍을까?"

"응, 사진? 왜?"

"우리 항상 찍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러자!"



아이와 사진을 찍는 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하지만 내가 아닌 아이가 먼저 사진을 찍자는 말에 괜히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아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나의 감정을 다 읽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말은 안 해도 그냥 가버리면 엄마가 서운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이와 찍는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한때 아이가 사춘기 때에는 말을 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엄마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했다.



변비를 달고 사는 나를 위해 우리의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근처 식당에 간 그때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학기 나는 영문과 마지막 기말시험을 앞두고 있다.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싶냐는 아이의 질문에 나는 계속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영어가 좋다고 했다. 힘들지만 읽고 배우고 쓰는 행위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그런 내게 아이는 말했다.



"엄마에게 영어는 참 그런 대상이구나. 영어 공부가 엄마의 정체성이 된 것 같아. 숙명처럼."



아이는 언젠가 점점 멀어질 것이다. 독립을 할 것이고 나는 그 독립을 축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 펄럭이며 연습하는 그 날갯짓이 높이, 그리고 멀리 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노련하고 멋진 엄마는 될 수 없을지라도 포근하고 편안한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엄마가.




아들, 먼저 엄마와 사진 찍자고 해 주어 고마워.

엄마와 김치찌개같이 먹어 주어 고마워.

엄마 생일 축하 전화를 해 주어 고마워.

스물아홉 살 생일이냐며 엄마를 웃게 해 주어 고마워.

엄마 아들로 태어나 주어서 고마워.

엄마의 정체성을 알아보고 이해해 주어서 고마워.

공감해 주어서 고마워.



이날이 유난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엄마와 아들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알아봐 주고 수용하는 순간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정체성을 알아보았다는 아이의 그 한마디는 마치 영화 <아바타>의 'I SEE YOU'와 같은 섬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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