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을 상상하다 1
부제: 모자 시리즈 1
* Title: 『 I WANT MY HAT BACK 』(번역서: 내 모자 어디 갔을까)
* Author: JON KLASSEN(존 클라센)
* PRINTED IN: 2011
* Publisher: WALKER BOOKS
커다란 몸집에 웃음기 없는 눈빛으로 앞을 응시하며 서 있는 곰이 있다. 자신의 모자가 사라졌고 소중한 그 모자를 꼭 찾고 싶어 한다. 길에서 다른 동물을 만난다. 여우, 개구리, 토끼, 거북이, 뱀... 하나하나 만날 때마다 곰은 혹시 자신의 모자를 보았냐고 물어보지만 대답은 부정적이다. 곰은 실망하지만 늘 '어쨌든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곰은 점점 지쳐가고 급기야 풀밭에 누워 절망한다. 과연 곰은 모자를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누가 가져간 것일까?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글, 존 클라센 그림)의 일러스트를 맡았던 작가, 존 클라센의 작품이다. 귀여운 외모의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독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직선의 눈빛이 인상적인 그의 스타일이 잘 녹아있다. 좋은 친구이자 글벗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독특한 스타일에 흥미를 느껴 더욱 파고들게 되었다. 그 당시 책의 내용 못지않게 그림이 참 기발했고 그림이 없었다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작가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본 듯, 아니 한 사람이 쓰고 그린 듯한 재치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존 클라센의 '모자 시리즈 3편'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돈키호테>처럼 동일한 주인공이나 캐릭터가 나와서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 형식이 아니라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거짓말, 사기와 같은 소재로 펼쳐지는 시리즈이다. 피카레스크 양식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슨한 연결점이 있는 옴니버스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 듯하다. 단, 주제가 아닌 '모자'라는 소재가 각 작품에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왜 모자를 등장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자 원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함에는 틀림없다.
혹시 내 모자 봤니?
아니. 왜 나한테 그런 걸 묻지?
난 본 적 없어.
어디서든, 어떤 모자든 본 적 없다니까.
난 모자 따윈 훔치지 않아.
그러니까 그만 물어봐!
아, 그래. 어쨌든 고마워.
본문 중에서
주인공이자 모자를 잃어버린 곰은 거대한 몸집과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귀엽고 포근한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예의도 바르다. 자신의 모자를 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무엇이 고마울까.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어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어서? 동물들은 솔직하고 간단한 답을 줄 뿐이었지만 곰은 그들의 말을 믿고 수용하는 순수함을 보여준다.
대부분 그림책은 글을 잘 표현한 보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지분은 다르다. 감동과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넘어서서 그림이 없으면 이야기 자체가 이해 가지 않을 만큼 필수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그림이 없었다면 독자는 절대 모자를 훔쳐 간 범인을 알 수 없을 테고 이야기는 과거 없는 현재처럼 공허한 종이 묶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표정과 태도를 보여주는 그림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글과 맞물려서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무서움을 자아낸다.
곰의 허무한 노력이 안타까웠고 범인이 너무 얄미웠지만 생각보다 너무 잔인한 결말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곰의 분노와 슬픔이 이해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결말을 보여주는 게 아닌지 잠시 우려가 되기도 했다. 바꾸어 생각하면 아이들은 작가가 보내는 간접적인 메시지에 더욱 집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자발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림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게 되고 글을 통해 거짓말과 도적질의 실체와 문제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다소 파격적이고 황당한 결말보다는 진짜 주제와 교훈에 집중하게 하는 작품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