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느껴지는 동화
부제: 모자 시리즈 2(2013 칼데콧 수상작, 2014 케이트그린어웨이 수상작)
* Title: 『 THIS IS NOT MY HAT 』(번역서: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 Author: JON KLASSEN(존 클라센)
* PRINTED IN: 2012
* Publisher: WALKER BOOKS
작가 존 클라센은 마치 잔혹동화 같은 긴장감을 남긴 <I want my hat back>을 발표하고 일 년 뒤, 두 번째 모자를 소재로 한 동화 <This is not my hat>을 발표했다. 그림 동화책만큼 책의 첫인상이 중요한 장르가 있을까. 주제가 어느 정도 주제가 드러나는 그림도 있지만 과연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아리송한 느낌을 주며 상상하게 되는 그림도 있다.
작고 귀여운 물고기가 헤엄치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자신보다 훨씬 작고 귀여운 모자를 쓰고 앙증맞게 수영을 하는 모습이다. 당연히 물속일 텐데 배경이 새카만 것을 보니 작은 어항보다는 심해일 가능성이 크다. 제목으로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자기 모자가 아니라고? 진짜 모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건가. 아니면 모자 주인을 찾으러 가는 착한 물고기의 이야기인가. 억양으로 들으면 어떤 뉘앙스인지 도움이 될 텐데. 번역본의 말이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이건 내 모자 아닌데.'- 알고 보니 내 모자가 아니에. 진짜 내 모자를 찾고 싶다.
'이건 내 모자 아니네.- 모자 주인 찾아줄까? 누가 잃어버렸나?
어미의 변화로도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한글 덕분에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거 내 모자가 아니야'를 대하고 처음 든 생각은 '자기 게 아닌 모자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보다'였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첫 번째 대사를 접하고 작은 충격을 받았다. 작은 물고기의 독백이다.
"This hat is not mine.
I just stole it.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방금 훔쳤거든."
본문 중에서
'이런! 너처럼 작고 귀여운 물고기가 왜 그랬니!'라는 심정으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모자를 막 훔친 방향과 반대로 헤엄치면서도 눈길은 훔친 곳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비밀스러운 행동이 드러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걸 알기는 아는 듯하다.
사실 이 모자의 주인은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였다. 모자를 훔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작은 물고기의 독백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림은 작은 물고기가 아닌 큰 물고기를 보여준다. 잠든 표정, 눈을 뜬 표정, 변화를 느끼고 생각하는 표정. 작은 물고기는 큰 물고기가 잠들었을 때 훔쳤기 때문에 진짜 주인과 상황에 대해 멋대로 생각하며 속삭인다. 완전범죄가 멀지 않았다.
작은 물고기가 울창한 물풀 숲으로 들어가며 자신의 완전 범죄를 확신하는 동안 독자의 긴장과 걱정은 고조된다. 큰 물고기의 움직임을 포함한 그림이 작은 물고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오히려 반대의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도둑질과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직접적인 선언과 지시가 빠르고 편하니까. <피노키오>를 읽다 보면 거짓말을 하는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다른 신나는 모험과 이야기에 묻혀버리기 쉽다.
이 책은 이러한 교훈과 기본 도덕에 대해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을 포함한 독자는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범인의 독백과 말없이 펼쳐지는 그림 사이에서 이 작은 물고기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그림은 계속되나 독백은 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책은 고요해지고 독자도 숨 쉴 수조차 없는 극도의 위기를 느낀다. 잠시 영화 필름 몇 장이 끊긴 듯 시간은 멈추고 공포는 극에 달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모자를 둘러싼 서스펜스와 충격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생각할 거리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고 배우는 지혜를 배운다. 문득 <철학의 힘>을 쓰신 김형철 작가의 서문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비밀이 없다. 둘째, 공짜가 없다. 이 둘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셋째, 정답이 없다."
9쪽/<철학의 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