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과학자의 시각을 바라보며

부제:PROJECT HAIL MARY를 읽다가

by 애니마리아


프롤로그: 우연히 새벽에 깨면 기분이 좋다. 두통이 없으면 더욱 좋다. 내게 중요한 아침 루틴을 좀 더 여유 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계획대로 안 된다. 헛웃음이 나오지만 나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부터 계획이 어긋났다고 나머지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다.



기말고사 기간. 책을 집어 든다. 원서 <PROJECT HAIL MARY>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아팠다>가 눈에 들어온다. 각각 500여 쪽, 300여 쪽에 달하는 책으로 나와 장거리 달리기를 하고 있는 책들이다. 평소 같으면 30분 정도씩 읽곤 하지만 시험공부에 집중해야 하니 10분씩만 읽자고 마음먹는다. 결론은?


음, 4시에 시작했는데 7시가 다 되어 겨우 덮었다. 물론 중간에 멈춤도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침 등산을 준비하는 남편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래도......



서론이 길었다. 오늘의 핑계.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다. 죽음. 이 단어 자체는 어찌 보면 한없이 무겁고 피하고 싶은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조심스럽고 때로는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오늘의 장면


외계인 로키가 여전히 며칠째 혼수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라일랜드는 210도의 고온에 노출되면서까지 로키를 살리려 하다가 심각한 화상까지 입었지만 과연 로키가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형식으로 잠시 과거를 떠올리는 라일랜드, 그는 지구를 위한 '자살 미션'에 뽑힌 뛰어난 과학자이자 우주비행사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어떻게 죽고 싶은가요?"(p. 342/PROJECT HAIL MARY)



이 질문 대상자는 드부아(프랑스인), 일류히나(러시아), 야오(중국이)이다. 소설 속 설정상 이들은 지구를 구할 임무를 띠고 12광년 떨어진 항성에 가야 하지만 돌아올 연료를 구할 수도 실을 수도 없다. 목적지에 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며 성공한다 해도 돌아올 수 없으니 자신의 생명을 마감할 권리가 주어진 듯하다. 여기서는 아직 지구 출발 전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일생일대의 임무를 맡기며 최소한 그들에게 마지막 선택권을 준 듯하다. 어찌 보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 작가는 이 쉽지 않은 문제를 특유의 재치와 상상력으로 끌어간다.



드부아의 제안은 이산화탄소 주입이다. 우주복(the EVA suit)에 설치하여 필요시 산소가 아닌 이산화탄소를 주입하여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질식 반사 작용은 폐에서 이산화탄소 과용량에서 일어나지, 산소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근거를 대면서. 냉정하면서도 가장 과학자 다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평소에도 유머를 중시하는 러시아 과학자 일류히나가 제시하는 내용은 다소 황당하다. 선택권이 있다면 자신은 의사가 제대로 배합한 '헤로인(금지 품목)'을 희망한다면서. 이유는 지구에서의 삶은 오로지 공부, 연구뿐이었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삶은 이제 불가능하기에 마지막이라도 '기분 좋게' 가고 싶다면서.



마지막 우주 과학자이자 그룹 리더 야오는 총을 제안한다. 이름도 생소한 A Type-92 handgun(92식 권총). 검색해 보니 1930년대 일본군의 총이라고 한다. 최신식 총이 아닌 다소 오래된 총이라 의외였으나 어느 정도 상징적인 의미로 선택한 수단이지 않을까 싶다. 이 제안을 듣고 라일랜드가 떠올린 이유는 '빠르고 고통 없는' 무기라는 점이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가톨릭 신자로서 모든 내용이 납득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혹은 가상 캐릭터가 처한 입장에서 이해는 간다. 계획 시간을 나도 모르게 넘기면서 관련 기사나 내용을 검색하고 공부하다가 알게 된 사실. 작가는 실제로도 무신론자(atheist)라고 한다. 과학과 논리의 힘을 믿는 작가임이 느껴졌다. 그가 그린 이 장면이 흥미로우면서도 그저 가볍게 지나가기에는 웃프기도 했다.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라는 별명이 있는 소설, <마션>에서도 그의 세계관과 삶에 대한 시각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은 간단히 짚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과정이다. 이런 SF 소설이 아니라도 죽음은 문득 내게 두려움 이상의 질문과 신비로 종종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아픈 곳이 많아서인지 죽음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주변(특히 자녀에게)에 폐를 끼치는 삶으로 마감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노력하고 싶다.



몸을 최대한 건강하게 만들어 치매와 같은 병을 피하고 싶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소설 속 과학자들처럼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선택보다는 비논리적이지만 수행하는 태도로 존엄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을 뿐이다. 기도하며 착하게 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타인을 배려하며 성실하게 사는 것. 선을 행하는 것. 이런 것들이 평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그래서라도 내가 원하는 순간에 감사하며 조용히, 존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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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rtian저자앤디 위어출판Brilliance Audio발매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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