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2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나 힘들고 숨이 차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험한 산이었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멈추고는 다시 돌아갈 찰나 정상에서 누군가 친히 내려와 손을 내밀며 물도 건네며 '산 정상에 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테니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다리가 아프면 제가 업고라도 가겠습니다. 그대는 결심만 하면 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정상에서 친히 내려와 도움의 손길, 초대의 말을 건넨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어느 목사님의 말씀
그리스도교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질문에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물론 선택은 자유다. 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고 대개는 힘들기 마련이다. 때와 장소가 다를 뿐. 아무리 수련을 하고 깨달음을 연마해도 공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모두가 강하고 철인 같을 수는 없으니. 나처럼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절대자에게 주뼛주뼛 나아가며 동행하기로 한 마음, 그것이 내 신앙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남양성모성지를 시작으로 올해 두 번째 국내 성지를 다녀왔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진암 성지'이다. 안내문에는 이런 설명이 덧붙여 있다.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 영어로 Chonjinam Shrine, The Birthplace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듯 한국의 천주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목회자나 선교사가 아닌 천주학을 깨우친 학자이자 평신도의 열정과 희생으로 시작되었다. 로마 황제의 공인을 받기 전까지 예수님의 제자와 수많은 신자의 순교가 그랬듯 한국의 가톨릭의 잔인한 처형과 고문에 희생된 분들의 역사로 가득하다.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최초로 세례로 받은 이승훈,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무지한 세월이 길다. 감사한 줄도 모르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이 성지의 특별함은 무려 다섯 분의 창립 선조 5위 묘역과 조선교구 설립자 성인 묘역이 모셔져 있다. 이 다섯 분 모두 끔찍한 형벌로 순교하셨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정약용의 셋째 형)
이승훈, 만천 베드로(정약용의 매형)
이벽, 광암 요한 세례자(이승훈에게 천주교 서적 부탁)
권철신, 녹암 암브로시오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권철신 동생)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정철상 가롤로
천진암 성지가 천주교 신앙을 깨닫고 믿었다는 이유로 순교한 이분들의 유해를 모신 한국 천주교회의 발상지가 되었다. 1779년 기해년 겨울 천진암에서 강학을 시작으로 여러 학자들이 서학서를 함께 연구하다가 스스로 신앙을 키우게 된 것이다. 천주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 주교(프랑스 선교사)는 <조선 순교사 비망록>에서 "조선 천주교회의 진정한 기원은 이벽의 강학이었다"음을 밝혔다고 한다.
이날 남편 안드레아와 성지순례를 하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며 다시 한번 나의 신앙생활이 결코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경청의 중요성과 고난의 순간에도 웃음과 해학으로 사는 자세를 들려주신 신부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나보다 훨씬 늦게 세례를 받았음에도 선한 언행을 바탕으로 성지로 이끌어주는 나의 수호천사, 안드레아에게 축복과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