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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데이트(우리 부부의 세계:팜 데이트)

by 애니마리아


“우리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그럴까?”



둘째 아이가 독도 체험 여행단에 다녀오게 되자 안드레아가 시동을 건다. 우리 둘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사실 안드레아는 가만히 있길 좋아하는 나를 위해 늘 뭔가를 구상한다. 요리를 하거나 어딘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다. 우리 부부는 MBTI 기준으로 슈퍼 E와 슈퍼 I가 만난 케이스다. 가끔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긴 하다. 안드레아는 가끔 자신은 내성적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23년 넘게 그를 알고 지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와 대화를 어려워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지인이든 낯선 사람이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을 트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반면 나는 아직도 낯을 가리는 편인데 드물기는 해도 코드가 맞는 상대를 만나면 수다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여행의 초안이 정해졌다. 원래는 남해 쪽으로 가기로 했다. 소수 관광객과 가이드가 포함된 투어를 예약했는데 장마 등 비 소식이 있어 중간에 취소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조용한 주말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안드레아는 늘 플랜 B, 플랜 C를 갈구하고 계획하는 사람이기에.



“들어 봐 봐. 색시야. 첫날은 안성에 있는 팜 체험 시설에 가는 거야. 농협에서 만든 곳인데 에버랜드 수준은 아니지만 동물을 볼 수 있고 수국, 해바라기 등 꽃밭도 많아서 산책코스로도 좋대. 6월 생일자는 입장료 50퍼센트 할인이야.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둘째 날은 미리내 성당도 가는 거야. 성지 순례도 하고 미사도 참여하고 오는 거지. 어때, 어때?”



그의 철저한 준비와 신나 하는 표정을 보면 거절할 수가 없다. 대개 받는 입장에 있는 나는 그와 같은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기에 수긍해 주고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그나마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리액션이자 최소한의 표시이다. 고마움의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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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랜드에 도착하니 온갖 귀여운 캐릭터에 분수, 동화 속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다행히 비는 안 왔지만 무더위에 산책길이 좀 걱정되었다. 입구 주변에는 무지개색 우산 및 양산이 무료로 제공된다. 유모차 대여소도 있어서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오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간 날은 주말을 앞둔 평일이어서 사람이 좀 적었다. 붐비지 않아 편안한 산책을 할 수도 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생각만큼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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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정원에 가기 전에 마침 동물 공연 및 체험 행사 시간이 가까워짐을 알았다. 평일에 단 한 번만 있는 관계로 우리는 주변 가축우리를 돌며 20여 분 남은 공연을 기대했다. 점점 기온은 오르고 불쾌지수는 상승했으나 우리나라 전통 소와 외국의 이국적인 소들을 가까이서 보니 그 자체로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사진으로 볼 때와 확연히 다른 소뿔의 위압감에 저절로 감탄이 쏟아졌다.



공연 시작 알림 방송이 나오고 그곳 직원이자 사회자의 밝은 목소리가 우리를 공연장 주변 객석으로 이끌었다. 비어 있는 잔디밭 공간에 놓인 장치를 보니 발 빠르고 활달한 개들이 나와 어질리티를 보여줄 거라 짐작했다. 돌계단 사이로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어린 친구들을 독려하며 중앙 무대를 가리키는 부모들, 우리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온 중년 부부, 풋풋한 감성을 풍기는 젊은 연인들의 예쁜 모습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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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콜리 한 마리가 힘차게 짖으며 훈련사와 호흡을 맞춘 공연으로 시작했으나 이내 한쪽에서 종류별로 무리 지어 다른 한쪽으로 이동하는 가축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회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저 오리의 종류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을 것이다. ‘아프리카 뿔 오리‘, 그냥 오리, 거위, 털 깎기 전 양들, 후 양들, 귀여운 돼지들, 염소들, 아기 염소들, 또 다른 보더콜리(루나 혹은 레아)의 하이라이트 공연까지 볼거리가 잠시 더위를 잊게 해 주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대부분 정해진 코스를 달려가는 동물들과는 달리 소수의 가축들은 경로를 이탈해 반항하는 바람에 훈련사 선생님이 당황해.. 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려니 넘기는 모습에서 여유와 해학이 느껴졌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러웠다. 인간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여 기계처럼 돌아가는 모습은 아무리 동물이라도 자연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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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돌면서 너무 더운 여름보다는 초봄이나 가을에 좀 더 힐링하며 거닐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이나 그렇겠지만 저질 체력일수록 쉽게 지치게 마련이니까. 산책길 중간에 작은 쉼터와 화장실도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물과 간식 등으로 에너지를 보충하는 지혜도 필요한 여행이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 혹은 나이가 좀 있어도 소년, 소녀의 감성을 다시 추억해 보고자 하는 인생의 여행자에게 팜랜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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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해바라기뉴스 내용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며 무더위가 찾아온 23일 경기도 안성팜랜드를 찾은 시민들이 활짝 핀 해바라기를 감상하고 있다./ 2025.6.23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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