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아리 뼈가 남았구나(미리내 성지) 3

by 애니마리아


감사하기 위해

철이 들기 위해

미사를 드리기 위해

나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알기 위해

안드레아와 의미 있는 주말을 보내기 위해

이기적인 내가 좀 더 이타적인 내가 되길 희망해서


성지를 거닐며 누구의 피땀과 희생으로 내가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그날도 나는 성지를 찾았다. 2025년 나의 수호천사이자 남편 안드레아와 찾은 세 번째 성지, '미리내 성지(mirinae Shri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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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기념 성당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작은 교회당보다도 훨씬 작은방 안에 그분의 아래턱뼈와 척추뼈가 모셔져 있었다. 기념관 안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잠시 그분의 안식을 바라는 기도와 감사를 드리고 나왔다. 밖에는 바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초대 신부님들의 묘소가 모셔져 있었다. 겨우 25세의 꽃다운 나이게 가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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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를 제대로 다 돌아보려면 두 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주요 건물만 돌아본다고 해도 서로 떨어져 있기에 만만치 않은 묵상의 길, 산책길이 되었다. 가 보지는 못했지만 성지 내에 있는 '미리내 성 요셉 성당'은 높은 탑 형태의 성당으로 제대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발가락뼈 유해가 있다고 한다. 이번에 미사를 드린 곳은 가장 중심이 되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으로 제대 아래에 신부님의 '종아리뼈 유해'가 모셔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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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당'이라 불리는 기념관 안은 성모님과 신부님, 순교자, 예수님의 탄생 신비를 표현한 예술의 집합체 같았다. 앞에 있는 초 선반에 작은 헌금을 하면 하나의 촛불에 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순종하신 성모 마리아 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따르고 싶다. 비신자 가운데 가톨릭에 대해 성모님을 믿는 종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 당시 율법으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주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을 잉태하고 나으셨고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신자들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인간으로 부활하신 분을 존경하고 기도드리는 것이지 신으로 추앙하는 게 아니다.



가끔 생각한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성모 마리아 님이 그러하셨고, 도마(세례명 토마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도 겪으셨으며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성지를 돌면서 기억해야 할 또 한 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로 이민식 빈첸시오 형제님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은 죄인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 당시 죄인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조차 두려운 일이었다. 그때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던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이민식 빈첸시오는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묘소 안장에 목숨을 걸고 오일 동안 밤에 이동하였다고 한다. 중년의 건장한 남성이었을 것이라 추측했으나 그의 무덤에 쓰인 문구에 당시 그는 17세 십 대 소년이었음을 알고 놀랐다.



이 외에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성당 일층에는 그 당시 고문을 당한 신자들의 모습을 구현한 기념관이 있었다. 모형이었지만 적도 아니고, 반항하고 대든 것도 아닌 그저 신자일 뿐이었던 사람들을 고문하는 모습으로 인식한 역사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심지어 12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에게 고문을 가하는 포졸들의 모습도 있었다.



성지를 돌 때마다 내가 누리는 호사를 기억하려고 한다. 교회 초기에 사셨다는 이유만으로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고 고통받으며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라도 나의 나태함을, 철없음을 재인식하고 감사하는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도 죄인이 될 수 있음을, 교만하고 부족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또한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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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銀河水)'의 순우리말인 미리내가 이 성지의 이름이 된 것은 당시 박해를 피해 숨어 들은 천주교인들 집에서 흘러나온 호롱 불빛이 마치 은하수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서구권에서는 Milky Way라는 이름을 붙여 신비한 젖줄의 이미지로 우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신비, 만남까지 깊은 의미를 지닌 은하수처럼 성 김대건 신부님은 겨우 1년여의 짧은 사제의 삶을 사시고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셨다. 우리에게 신의 사랑을 남기고 이별 후 우리가 다시 만날 신비와 기다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희생하신 분들의 은총을 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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