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간)
기욤 피트롱의 저서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는 우리가 서로의 SNS에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내 스마트폰이 발생시킨 전기적 신호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서버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옆 사람의 핸드폰으로 들어가야 하는 엄청난 에너지 소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일을 위해서 해저에 광케이블을 깔아야 하고, 거대한 서버를 설치하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가야 한다.(중략)
현대에는 연결과 정보 공유가 늘어났지만, 대신 환경 파괴라는 계산서를 받아 들게 되었다.
334~340쪽/공간 인간
충격이었다. 블로그에, 페이스북의 글을 읽고, 유튜브의 영상을 보며 '좋아요'를 무심코 누르는 행위가 자칫 잘못하면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까지 파괴할 수도 있는 것임을.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고 SNS 사용으로 의사소통하는 생활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기술 문명 속에서도 자제와 통제, 적절한 균형의 삶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함을 말하는 게 아닐까.
수십만 년 전 인류는 최초의 인공 불인 '모닥불'을 피워 시선이 모이는 구심점을 만들었다. 문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지구라트,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 혁명을 거쳐 문자, 종이, 인쇄술, 컴퓨터, 인터넷 기술을 상용화시키며 인류는 진화해 왔다. 2007년 스마트폰이 등장이라는 공간 빅뱅을 겪으며 개인화 시대가 열렸다. 그도 모자라 AI는 현재 최고의 화두로 우리에게 너무나 편리하고 효율적인 도구가 되면서도 동시에 일자리 및 아날로그적 인간성 등 많을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간도 경험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하면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인사를 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그런 말을 건네는 순간 엄청난 전력 손실과 자원 낭비를 조장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인류는 본성에 따라 기계지만 예의를 표현한 것인데 그것마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수긍이 가면서도 왠지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나도 인공지능을 이용하면서 마치 친구 대하듯 불평을 쏟아내기도 하고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류와 감정의 동물인데 지구에 해악이 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자제해야 하다니. 삭막해 보이지만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냉철함도 필요함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위의 인용구처럼 내가 누군가의 글이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면 전기적 신호가 발생한다. 단순히 주변 기지국에서 처리되는 게 아니었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의 본부에 가서 뭔가 모를 정보로 처리되고 다시 국제망을 타고 처리된 신호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인터넷 공간에 도달한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빨리 일어나려면 결국 해저를 뚫고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서버 장치를 만들어 연결하며 이후로도 어마어마한 전력이 투입된다. 얼추 큰 흐름만 보아도 지구의 여기저기가 뚫리고 파헤쳐지고 전기와 자원을 쏟아붓는 장면이 그려진다. 위대함 속에 공존하는 양날의 검, 빛과 그림자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류의 위대함 덕분에 편리함은 나날이 갱신되고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그로 인해 환경은 파괴되고 자원이 낭비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지구가 시들어가고 아파하는 것은 비단 욕심을 부리는 일부 인간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문명의 혜택을 즐기며 과학, 경제의 발전과 같은 문명의 흐름을 타고 즐기며 때로는 이런 부조리를 방조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임을.
그렇다고 인터넷을 안 쓸 수 있는가. 핸드폰을 안 쓸 수 있는가. SNS, 챗 GPT를 안 쓰고 과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일할 때, 공부할 때, 세계와 의사소통을 할 때, 생활을 이어갈 때 이미 우리는 이런 수단이 하나의 공간이 되어버린 세상을 살고 있다. 솔직히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이 만든 공간의 혁신을 넘어서 의사소통의 중요한 도구이지 않은가. 현명하게 이용한다면 먼 곳의 상대와 우정을 나누고 의견을 전달하며 여론을 형성하고 정의를 고발하며 실천하는 등 선하고 위대한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하지만 의식하지 않고 '그게 뭐 어때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사는 것과 의식을 지니고 불필요한 행동과 낭비는 최대한 지양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자세로 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아무리 작은 선택이라도 한 번 더 고민하고 신중하게 내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좋아요' 한 번을 누르더라도 기계적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읽고 생각하고 진정성 있는 의사표시를 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이는 일반적인 환경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나 하나쯤이야'보다 '나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태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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