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뜻대로 안 될지라도

by 애니마리아


지난 주말, 토익 시험을 보았다. 나의 일 년 루틴에 해당하는 토익은 올해 1월에 치렀어야 하는 시험이나 팔 골절과 수술 때문에 일정을 취소하고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3월부터 6월까지는 전공 수업에 신경을 써야 해서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멀티 플레이어가 아닌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이상 집중하기 힘든 사람이다. 결국 7월에 보게 되었다.



한 달이지만 생각만큼 시험 준비를 잘할 수 없었다. 첫째가 군에서 제대한 후 2주간 집에 있었고 아이와 함께할 기회를 나는 놓칠 수 없었다. 그동안 미뤄왔던 병원 검진과 치료도 몰아서 하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전문 병원과 대학 병원을 들락거렸다.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생각지도 못한 질병 치료에 2주에서 3주를 신경 써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다 여기며 스스로 위로하려 해도 상당 부분은 핑계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요즘처럼 덥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햇살에 짓눌린다. 공식적인 날씨 온도는 38도를 운운했지만 체감 온도는 45는 훌쩍 넘게 느껴질 정도로 숨이 막히고 더웠다. 저림 현상에 수족 냉증이 심해지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 말해왔는데 올해는 그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 밖에 나가기가 무섭게 나의 걸음은 느린 좀비처럼 늘어지고 급 노화가 진행되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안드레아가 헉헉대는 내게 말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현재 온도는 지면에서 1.5m 높이에서 잰다고 하잖아. 그것도 이렇게 뙤약볕이 내리쬐는 곳이 아니라 그늘지고 통풍이 잘 되는 백엽상에서 말이지. 잔디밭도 아닌 이런 아스팔트, 도로투성이인 아파트 단지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온도는 최소 10도는 더해야 한대. 그러니 섭씨 38도가 아니라 거의 50도라고 봐야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는 표정을 지으니 스마트폰 날씨 앱을 보여준다. 요즘은 체감온도까지 함께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식 온도 옆에 체감 온도가 정말 49도, 50도, 이렇게 함께 표기가 되어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시험, 날씨마저 핑곗거리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날 아침에 나의 정신은 불길한 느낌을 몰아내기는 역부족이었는지 나약하기만 했다. 우선 한 달 전 시험 접수를 할 때 내가 사는 지역에 수험장이 전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위성도시에 토익 수험장이 없다니. 할 수 없이 집에서 먼 안양의 한 수험장을 선택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으나 고맙게도 안드레아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동시에 미안하기도 했다. 수험장인 안양대학교는 가파른 언덕에 있었고 캠퍼스 안 구조도 마찬가지였다. 초행길인 데다가 주말이라 교통 상황이 걱정되어 우리는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다. 나는 시험 고사실로 들어갔지만 안드레아는 거의 세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 아무리 차 안이라도 강렬한 햇빛에 수시로 자리를 옮겨 주차해야 했다고 한다.



3 고사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의 자리는 맨 끝이었다. 시험 종료벨이 울리면 가장 얄짤없이 일어나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어 제출하는 자리. 뭐 그 정도는 괜찮았다. 가장 중요한 건 시험 자체니까. 틈틈이 문제집으로 시간관리를 하며 연습했지만 이날 RC(독해)는 유난히 시간이 모자랐다. 삼중지문 연계 문제가 중요한 부분을 풀려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종료 시간을 15분, 5분, 3분 단위로 계속 들을수록 불안해졌다. 결국 제대로 다 풀지도 못하고 대충 마킹한 채 제출해야 했다.



기분이 안 좋았다. 일 년에 단 한 번 매너리즘과 안일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몇십 년 동안 해온 루틴이 허무하게 무너진 기분이었다. 시험에서 최악은 다 못 풀고 오는 것인데 모의고사 연습 및 아날로그시계까지 나름 준비한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이도에 상관없이 차분하게 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리는 내 멘탈에 화도 났다.



시험을 마치고 나왔다. 안드레아가 '많이 어려웠나 보네. 그래도 고생했어'라며 위로해 주었는데도 내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순간 나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결과는 내 손에서 떠났고 어떻게 나오든 바꿀 수 없었다. 나를 위해 한나절 이상 운전하고 기다려 준 남편은 무슨 죄인가. 나 자신의 문제, 짜증 나는 상황 때문에 내 소중한 사람의 기분까지 망쳐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 짜증 내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더위와 싸우며 기다려준 안드레아와 남은 주말마저 망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속상하다고,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최대한 시험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점심 식사를 위해 간 식당에서 애써 밝게 말하며 맛있게 먹으려 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배가 부르자 처음의 우울함이 꽤 사라졌다. 안드레아가 고른 매콤한 메뉴, 갈치조림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이래서 마라탕을 그렇게 좋아하나 싶다. 자극적인 맛과 탄수화물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 달에 시험 한 번 더 봐야겠어'라고 말하며 이열치열 같았던 일정을 마무리했다. 삶이 늘 내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건 않는다. 때로는 노력해도 잘 안되기도 하고 노력 없이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마음이 울적할 때 누군가는 유행가를 부르는 것처럼 나는 푸시킨의 시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날의 기분에 끌려다니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교훈은 남기고 부정적인 기분은 털어버리기 위해.









If by life you were deceived,

Don’t be dismal, don’t be wild!

In the days of grief, be mild —

Days of joy will soon arrive.

Heart lives in the future still;

Present is dejected here:

Everything is passing, will —

What is gone will soon be dear.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소중해지나니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Alexander Sergeyevich Push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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