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느리게 간다는 '국방부의 시간'은 여지없이 다가왔다. 같은 시간인데도 그에게는 느리지만 부모인 우리에게는 ‘어느새’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빠르게 느껴졌다. 인간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 입장에 따라 다르다. 세대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더운 7월의 여름날 아들이 저 멀리 함께 지낸 후임들과 상사, 동기들의 환송을 받으며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개인 짐이 한가득에 뭐가 그리 많은지 박스도 여러 개라 후임들이 나누어서 아들 대신 들고 오는 배려와 전역을 축하하는 미소, 몸짓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 막 출근한 여군들까지 나와 환송하는 아이를 알고 지낸 대한민국의 군인들의 청춘이 애잔하면서도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가장 빛나는 시기를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그들. 기성세대들은 흔히 ‘MZ 세대들은’ 라며 운운하고 그들을 낯설어하지만 뭐라 해도 그들은 우리의 현재의 심장이고 미래이며 살아있는 수호천사들이다.
아이는 제대가 가까이 오자 그동안 간직해 온 소망과 계획을 하루, 아니 바로 실천하고 싶었나 보다. 평소에도 절약하는 습관을 지닌 아이는 군인에게 지급되는 돈도 여행과 중고차 구입을 위해 적금을 붓는 등 열심히 모았다. 학교에 복학하게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해야 하기에 자신만의 이동수단을 꼭 마련하고 싶었다고 한다. 첫차이니만큼 계약도 복잡하고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남편과 내가 동행하기로 미리 약속했다.
이날이 특별했던 이유가 또 있다. 남편은 셋째 아들로 첫째, 즉 큰 아주버님의 아들이자 집안 장손이 함께 했다. 아이의 사촌형이 축하하러 일부러 소중한 연차 휴가를 내고 부대까지 찾아온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 무더운 여름에 일도 포기하고 개인 시간을 들여와 준 조카에게 너무 고마웠다. 몇 년 앞서 군대를 다녀왔고 형이라는 이유로 사촌 동생을 챙기는 게 요즘 세상에 쉬운 일인가. (멋쟁이 조카 MK야, 고마워)
중고차 시설은 꽤 컸지만 아이가 생각하는 모델과 가격, 성능이 일치하는 차를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시장의 환경, 조건 변화는 우리 부부에게도 당황스러웠을 정도로 컸다. 혹시 유사한 계획이 있을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작은 정보를 남겨보려 한다.
우선 가격이다.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보고 어느 정도 고른 후 가보더라도 그 제품은 이미 나갔거나 미끼 상품일 가능성이 있다. 아이가 봐 둔 차는 무난해 보였지만 하자가 있었고 딜러도 그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이 가격에 하자가 전혀 없다면 이미 내놓자마자 누군가 사셨을 거예요. “
자본주의 시장에서 맞는 말이었다. 딜러의 솔직한 부분이 마음이 들었지만 뼈를 때리는 듯한 진실이 막상 현실에서 확인하니 우리는 당황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액면가는 저렴하나 나중에 보수를 하는 비용이 더 들 수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딱인 상황. 게다가 하자는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요소이기에 결국 좀 더 가격을 올려 볼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시간은 더 걸리고 고민도 늘었다.
우여곡절 끝에 차를 골랐지만 계약을 할 때 드는 부대비용이 다시 한번 우리의 숨을 조였다. 차 값과 보험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딜러에 대한 수수료와 함께 차 조합에 내야 하는 조합비, 차 이전비(전주인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만 합해도 거의 차값과 맞먹었다. 이번에야 알았지만 보험료는 나이가 어릴수록 비쌌다. 경험이 없어 사고 위험이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험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내고 있는 어른 평균 가격의 3배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의 첫차를 함께 시승하며 속으로 안전을 빌었다. 아이의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안드레아(남편)가 말했다.
“기름이 얼마 없네. 마리아 님. 원래 아이의 첫 주유는 엄마가 해 주는 거 알지요?”
“아, 그래요? 알았어요.”
사실 몰랐다. 그러면 어떤가. 아이가 이제 대한민국의 남자로 다시 태어나 사회로 들어가려는 길에 아무리 걱정되어도 믿고 바라보며 축복을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집에 와서 아이가 군복을 펼쳐 보였다. 셔츠 안쪽에는 그동안 동기, 후임 등 전우들이 적어 준 편지, 좋은 문구가 가득 적혀있었다. 특히 한가운데에 한 동기가 그려준 아이언맨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각자의 고향도 환경도, 역사도 다르지만 전우의 인연을 맺은 그들의 마음에 나도 괜히 울컥했다. 이들 뒤의 부모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자신을 불태우며 빛을 발하는 이들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아이야,
수고했다.
고생했다.
자랑스럽다.
인생의 한 고비를 넘겼구나.
한국 남자의 숙명을 잘 이뤄냈구나.
앞으로 더 크고 험난한 파도를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너를 믿는다.
너의 앞날을 축복한다.
주님의 은총을 빈다.
사랑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