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제대하고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다가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이미 성인이 되었고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가장 큰 의무 가운데 하나를 마치고 나서 그동안 얼마나 자유를 그리워했을까. 엄마로서 짐작만 할 뿐 그의 고독과 답답함, 때로는 두려움으로 지낸 시간을 온전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훈련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유가 없어서 힘든 곳'이라는 말로 아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안드레아(남편). 제대하자마자 몇 시간도 되지 않아서 알뜰하게 모은 군인 저축으로 중고차를 구입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자니 어릴 적 아들이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놀던 모습이 떠올랐다. 늘 '빠방 가자, 빠방~'하며 엄마, 아빠라는 말보다 더 빨리, 자주 말했던 유아기의 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니.
* 병원 데이트
아이가 온 주 내내 비가 왔다. 당장 그다음 날 나는 병원에 가야 했고 가까운 거리임에도 아이는 태워주겠다고 자원했다. 걸어서 십 분이면 가는 거리라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나는 아이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하며 "태워주면 좋지!" 하고 대답했다. 일단 학교 근처로 이사하면 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언제 타보겠나 싶어서. 안드레아가 아닌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간 오 분간의 첫 드라이브 데이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자녀와 함께 병원 갈 때 이런 묘한 기분을 느끼시겠구나 싶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내게 의지하던 아이에게 이제 내가 기대는구나.
* 아이의 요리 맛보기
"엄마, 저녁 뭐 먹고 싶어요?"
"응, 글쎄. 김치볶음밥 할까?"
"알았어요. 내가 할게. 재료만 좀 꺼내줘요."
아이는 요리를 좋아한다. 아빠를 닮은 것 같다. 나는 요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대충 해 먹는 나와는 다르게 꼼꼼하게 레시피와 양을 지키는 아들. 자신은 전형적인 T(MBTI)라며 제대로 된 요리법을 지켜서 해야 맛도 있고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나는 이런 호사를 또 언제 누릴까 싶어 그 말에 조용히 따랐다. 일반적인 조미료 외에 굴 소스, 파, 올리고당 등 이런저런 양념을 추가해 김치와 밥을 볶고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반숙 달걀 프라이까지. 소박하지만 내겐 진수성찬 못지않은 귀한 음식을 잠시 감상하고 수저를 들었다.
주말이 되어 안드레아와 나는 아이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주차장을 통과하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보자니 세대와 세대의 공존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아들이자 남자 대 남자로 걸어가는 모습. 우리 가족은 또 이렇게 익어가는구나. 한 번은 내가 아들에게 오래간만에 자유로이 쉬는데 집에서 엄마, 아빠 모시고 다니고 요리하는 게 귀찮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 나 원래 요리 좋아하잖아. 며칠 같이 있는 동안만이라도 요리 많이 해줄게요."
말만 들어도 배가 불렀다.
* 약속 듣고 심쿵하기
아이가 떠나기 며칠 전 이틀은 나와 놀자고 했다. 하루는 다른 도시에 사시는 외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했고 나머지 하루는 어릴 적 살던 도시의 도서관에 가 보자고 했다. 솔직히 두 번째 제안에 속으로 무척 놀랐다. '그게 엄마의 정체성이야'라고 말했던 아이의 말이 그냥 지나가는 빈 강정 같은 농담이 아니었다. 도서관은 내가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곳이면서 어릴 적 아이와 종종 다니던 추억의 장소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일부 풀 수도 있는 애증의 장이기도 하다. 마냥 노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나를 위해서였을까. 늘 공부와 책을 가까이하려 하는 엄마를 기쁘게 해 주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토익 시험이 다가오고 번역 과제에 치이고 또 다른 시험을 준비하는 상황이지만 나는 기꺼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자친구도 있는 아이가 엄마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려는 그 마음만 보아도 이미 내게 '심쿵 지수 초과'다. 실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들이, 나의 요한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위해 또 다른 추억거리를 생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