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와 체
지난 주말 안드레아(남편)와 함께 농촌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말이 봉사지 반은 잠시 일을 도와드리고 반은 체험학습이었다. 장소는 강원도 춘천의 한 오지 마을로 작년에도 갔던 곳이다. 편도로만 세 시간 남짓 가야 하는 길이었으나 막상 마을로 들어서서 맑은 시냇물과 정갈한 산속의 풍경을 보는 순간의 느낌은 그 어떤 마법의 숲보다도 아름다웠다.
고속버스를 타고 몇십 명의 가족 단위 사람들이 같은 곳에 도착해서 다시 일손이 부족한 집의 추천을 받았다. 마을 이장님이자 멋진 여성 리더님의 따뜻한 인사와 안내를 받고 먼저 고추밭으로 갔다. 무더운 여름이라 시작도 하기 전에 땀이 났고 드넓게 펼쳐진 고추밭에 쪼그려 앉아 딸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은 덥고 습했으나 구름이 끼어있어 햇빛이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녀노소, 고사리 같은 손의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합세해 열심히 고추를 딴 결과 생각보다 빨리,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었다.
"와, 고추 따는 거 재미있어."
"야, 아까 여기 선생님이 푸른색 섞인 건 따지 말고 아주 빨갛게 익은 것만 예쁘게 따라 하셨어."
"알았어. 그런데 농부들은 정말 맨날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거야?"
"그럴걸. 이거 다 팔면 돈 많이 벌겠지?"
"꼭 그런 것도 아니야. 이렇게 힘든데. 그냥 회사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옆에서 재잘대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의견을 펼치는 아이들의 대화 내용만 들어도 웃음이 저절로 났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체험은 아이들에게 먹거리에 대한 고마움과 노동의 신성함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고추를 다 따고 다시 강당이 있는 건물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배도 고팠지만 청정 지역에서 먹는 밥, 김치, 전, 여러 정성스러운 한식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두부 만들기' 체험 행사가 이어졌다. 나는 남편 하고만 갔지만 다른 가족은 아이와 함께 온 집도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일이 많고 중요한 두부 갈아 놓기, 간수 준비, 찌기 등의 작업은 미리 주최 측에서 해 놓으셨다. 우리는 준비된 틀과 보자기에 순두부 상태의 재료를 넣고 뚜껑으로 닫아 굳히기 작업을 하고 기다리면 되었다. 새하얗고 단단한 두부가 만들어지는 체험은 나도 처음이었기에 신기하고 즐거웠다.
어느새 시간이 되어 포장 용기에 두부를 담아 선물로 받고 그에 더해 감자, 반찬, 옥수수 등 덤으로 주신 선물이 한가득이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다. 물론 다시 두 시간 넘게 차를 타야 했지만 농사를 생계로 살아가는 어르신들에 비하면 거의 애교 수준이지 않는가. 잠깐, 아주 잠시였지만 직접 누군가의 고됨을 겪어본다는 것만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돌아오면서 고단함과 피곤함, 졸린 감정이 뒤섞였음에도 가슴이 벅찼던 이유는 마음 저편에 자리 잡은 감사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분들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고 인생의 선배이며 오랜 세월 한반도에서 터를 잡아 주신 선조들의 연결 고리니까 말이다.
작가 고명환(그 외 요식업 사장, 개그맨, 배우, 유튜버, 베스트셀러 작가 등등) 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면 힘들고 피곤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피곤하죠. 본업은 식당 경영이지만 강연이 수업이 거의 매일 잡혀있어요. 때로는 먼 지방에도 다녀와야 합니다. 눈코 뜰 새 없이 크 바쁘지만 독서와 확언, 글쓰기는 하루라도 멈출 수 없습니다. 힘듭니다. 왜 저라고 힘들지 않겠어요. 때로는 속상하고 우울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일을 스스로 하기에 고단해도 기쁘게 합니다.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전 언제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고명환('지식 인사이드' 중에서)
그러고 보면 고 작가님도 소년과 같은 분인 듯하다. 니체가 말한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 중에 단연코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분이다. 주체적인 삶, 힘들어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기 노력하고 읽고 쓰는 삶. 결코 과거 연예인의 후광만 의지하는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보면 미소가 지어질 것 같다. 누군가의 정성과 햇빛의 강렬한 열정이 담긴 결실의 이야기가 다시 보일 테니까. 어서 비가 와서 잠시나마 그분들의 땀을 식혀주길 바란다. 너무 많이는 말고 적당히.